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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서점/다시서점 일기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지켜야하는지

by onebookonelife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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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에는 도시를 크게 한 바퀴 돈다. 랜드마크를 익히고 큰길을 머릿속에 넣는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을 가고 사람들이 막연하게 믿어대는 것을 본다. 이 막연한 믿음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 종교나 철학, 사상이 그 당시에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으로만 구성되고 차후에 상상을 통해 살이 붙어가는 과정을 보면 막연함이 이룬 이 사회의 역사란 실로 우스운 것이다. 인간은 겨우 백년 간 정리된 지식을 교육받고 으스대지만 지식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이 서있는 자리와 사회, 환경 등이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끼친다.

5월 6일.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이 열렸다. 70년만에 열리는 행사였다. 그러나 아무도 대관식을 경험해보지 않아 복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그들의 머리에, 옷에 붙은 다이아몬스가 영국이 훔친 물건이라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언론은 ‘세기의 대관식’, ‘역사적 예식’과 같은 허위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은 경제대국이지만 식민지배를 통한 착취로 그 자리에 섰다. 식민지배 동안 인도는 2천만명 가까이 기아와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왜, 무엇을 위해. 당시 처칠은 벵골 대기근을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방관했다. 방관은 사회를, 인류를 좀 먹는다. 그리고 범죄자들에게 쉽게 자신을 합리화할 여지를 마련해준다.

인도 벵골지역에 태어나 10세 때 목격한 1943년의 '벵골 대기근'의 참혹한 현실을 보고 자란 Amartya Kumar Sen 교수는 ‘기아의 원인이 식량 부족이 아니라 잘못된 분배‘라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2020년, 영국은 코로나19 이후 영국 내 굶는 아동들이 많아지자 유니세프의 긴급 식료품 지원을 받았다. 영국 내 18세 미만 인구의 17%에 해당하는 약 240만 명 어린이가 음식 섭취가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민지의 굶주림을 방관하던 이들이 자국에서도 여전히 잘못된 분배로 굶주림을 탄생시킨 것이다.

믿음은 거처를 옮긴다. 종교, 사상 따위에 천착하던 인류는 다른 종교, 다른 사상으로 그 거처를 옮기다 이제는 돈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미 몸을 빠르게 움직인 사람들은 시장이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이해했다. 돈으로 학력을 사고, 돈으로 권력을 사고, 돈으로 세력을 사는 것이 당연한 세상. 잘못된 사실을 이해하고 고치려 하기보다 영국왕 머리에 붙은 훔친 다이아몬드를 부러워 하는 천한 사고와 그들이 이룬 것이 장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인양, 그들은 그래도 되는양 이미 벌벌기며 계급을 나누어 노예가 된 모양. 주인님은 나를 굶기지 않을 거라는, 적어도 나는 이 시스템에서 탈락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저출산, 고령화, 경제인구 감소 등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야기한다.

베트남 여행을 가자마자 방문한 곳은 사진 속 베트남 여성 박물관이었다. 인도차이나 전쟁 과정에서 베트남 여성은 직접 전쟁터로 나가 삶을 지켰고 그 이후 베트남 가정과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결정권이 넓어졌다. 각종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젠더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이 베트남보다 여성 인권지수가 낮게 나오는 이유는 이러한 과정으로부터 생긴 결과다.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믿고 싶어 하는 바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나만 아니면 돼’, ‘나는 아닌데’라는 정도의 말들이 문제를 방관하고 나아가 조장한다. 먹고 사는 정도의 문제가 죽느라 사느냐까지 가게 되면,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지켜야하는지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폭력이 아름다운 세상, 약탈이 아름다운 사회에서도 지킬 것은 제 먹을 것뿐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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