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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서점/다시서점 일기

그래도, 희망을 버리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by 다시서점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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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식사를 했다. 뉴스가 여전히 헛소리를 늘어놓는 동안 술 한 병을 비웠다. 아버지는 내게 “살면서 복을 쌓아야 다음 대에도 복을 받는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아닐 거라고 말했다.

친일파 후손들이 지금도 잘 먹고 잘 살면서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건 아무도 벌을 받지 않아서라고, 내 소꿉친구가 “우리나라는 사기를 쳐야 돈을 번다.”라고 말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우리는 가스비 오르는 걸 걱정하지만, 재벌들은 어떻게든 세금 안 내는 걸 걱정 한다고. 우리가 남 걱정할 때 그들은 언제나 자신만 걱정한다고.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다.

“맞다. 네 말이 맞다.” 아버지는 내 말이 맞다고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바라본 세상이 제발 좀 틀리기를 바랐다. 뭐라도 하면 손톱만큼이라도 바뀌어 있기를 바랐다.

사람들은 이제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태도와 행동을 동경하고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다. 배려와 호의는 우습게 여긴다.

집으로 돌아와 모아놓은 펭귄 인형을 보았다. 펭귄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들은 허들링을 하기 때문이다. 펭귄이 사는 세계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심오하겠지만, 그들은 안다.

체온은 추위를 녹일 수 있다는 걸. 버티면 봄이 온다는 걸. 돌아가면서 추위를 녹이다 보면 그날이 온다는 걸. 나는 아버지에게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매일 밤 허공에 꽃을 심는다.

아버지는 안다. 그리고 나도 조금은 안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굴러갔고, 굴러갈 것이라는 걸. 그래도, 희망을 버리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위로이자 마취, 고문이자 기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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