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독일의 겨울은 유난히 흐리고 축축합니다.
크리스마스마저 없었다면 베를린 사람들은 기나긴 겨울을 무슨 낙으로 견뎠을까요?
베를린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다섯가지 이야기가 담긴 책,
“아인말 슈톨렌, 비테”를 통해 슈톨렌과 글뤼바인 향이 가득한 독일의 크리스마스를 경험해보세요.
*이 책의 제목인 ‘아인말 슈톨렌, 비테’는 ‘슈톨렌 하나 주세요’라는 뜻의 독일어입니다.
<목차>
구덩이의 비밀 아인말 슈톨렌, 비테 크리스마스의 유령 무임승차자 티타임 산사의 크리스마스(덧붙이는 이야기)
<책 속의 문장>
까치도, 멧비둘기도, 참새도, 털색이 조금 연한 청설모와 나무를 타는 폼이 어색한 청설모와 짝짓기 철에 이성의 선택을 잘 받지 못하는 청설모도 모두 소문을 듣고 공원에 모였다. 열매를 먹지 않는 흰 고양이도 구경 삼아 마실을 나왔다. 길 건너 집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음악 소리를 배경으로, 모두가 사이좋게 잣과 호두와 아몬드와 헤이즐넛을 부숴 먹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웠다. 나는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지금 첫눈이 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구덩이의 비밀’ 중에서
M.O.Q. 모자를 쓴 손님은 계산대 옆 진열장을 바라보았다.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브레첼은 오늘 없나요?” “네, 죄송합니다, 손님. 크리스마스 이후부터는 다시 팔 거예요.” M.O.Q. 모자를 쓴 손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물 곳을 잃어버린 그의 시선이 가게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작은 베이커리는 온통 슈톨렌과 슈톨렌에 대한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드디어 오늘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방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제빵의 신이며 베이커리 직원으로서의 소명의식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흥분이 자리 잡았다. 브레첼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바로 뒤돌아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아직도 가게에 남아 있다니. 게다가 그의 시선이 정확히 슈톨렌 박스를 향하고 있다.
- ’아인말 슈톨렌, 비테’ 중에서
“빠흐동Pardon— 아니, 츌디궁Tschuldigung— 여기 독일이지. 저건 글뤼바인이고. 어쩐지 향이 조금 콤콤하더라고. 향신료들의 비율이 좀 잘못된 거야. 아니면 독일산 레드 와인을 썼든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프랑스가 그렇게 좋다면 샹젤리제 거리에서 시트로엥이나 푸조에 치였어야지, 어쩌다 베를린 쿠담에서 얼쩡거리다 BMW에 치여서 죽었담. 마음만 먹으면 프랑스어의 뉘앙스나 억양을 싹 빼 버린 완벽한 독일어를 할 수 있으면서 꼭 나랑 대화할 때만 프랑스인 티를 내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독일 유령들처럼 나 역시 독일의 식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욱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크리스마스의 유령’ 중에서
티켓 검사 전에 사람들을 둘러보며 누가 무임승차자일지 잠깐 상상해 본다. 사람들의 연령대나 차림새가 중요하진 않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열차에 타서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주위를 흘끔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무임승차자다. 베를린에서 대중교통 검표원으로 일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냉소적인 ‘베를리너’들은 검표원을 무슨 정부의 끄나풀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티켓 확인하겠습니다.”하고 말하는 순간, 열차 칸에는 일순 긴장과 적대감이 감돈다.
- ’무임승차자’ 중에서
독일 생활의 첫 단계를 무사히 넘겼다고 주희는 생각했다. 집을 구했잖아. 이제는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B1, B2, 그리고 C1 단계 독일어 자격증을 따고, 짬짬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베를린에 있는 두 곳의 미술 대학 중 한 곳에 합격하고, 독일 친구도 만들고, 작업도 열심히 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금전적으로 좀 여유가 생긴다면 이웃 나라로 여행도 가 보고, 언젠가는 시내가 가까운 곳에 혼자 살 집도 구하고…….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주희의 상상에 끼어들었다. 문을 여니 갓 구운 치즈케이크의 달콤한 향기가 방 안으로 쏟아졌다. 문밖에는 레아가 앞치마를 두른 채 서 있었다. 잠깐 나와서 차 좀 마셔요.
-’티타임’ 중에서
“정말, 덩치 큰 외국인이 큰 자루를 들고 대웅전에 들어가 있다구요. 그리고 어떤 아이가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고, 그래서 여기로 왔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스님. 뉴스 못 보셨어요? 며칠 전에 옆 산 봉현사 대웅전이 털렸어요. 한밤중에 와서 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불상들과 시주함만 들고 사라졌다구요!” 율도 스님은 말을 마치고는 영현 스님이 맥없이 손에 쥐고 있던 빗자루를 뺏어 들어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파지하는 자세가 꽤 그럴듯했다. “저 속세에서 검도를 좀 오래 했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니, 잠깐만요, 율도 스님!” 영현 스님이 말릴 틈도 없이 율도 스님은 마루 위로 뛰어올라 문을 벌컥 열어젖힌 뒤 성큼성큼 대웅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산사의 크리스마스’ 중에서
<서지 정보>
가격: 13,000원
판형: 110*170
쪽수: 152페이지
출간일: 2023.11.25
ISBN: 979-11-985257-0-3(02810)
만든이: 송민선, 최중원
펴낸곳: 풍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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