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그릇에 담긴 사람들은 어떤 삶을 꿈꾸며 서울에서 살아갈까요. 사회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민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로, 6.25 전쟁 이후로, 민주화 이후로 그 당시 꾸지 못하던 꿈을 현실로 마주하고 싶어합니다. 그 꿈은 정책이나 제도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회 현상으로 대두되기도 합니다. 욕구와 욕망이 나르시시즘적으로 발현되고 현실에 만족하는 방향으로 쌓이는 것을 '행복하다'라고 느낄 수는 있지만,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는 어렵지 않을까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니까요.
어떤 이에게 서울은 로컬이 아니라고 여겨지지만, 그건 로컬을 지역으로만 번역한 탓입니다. 로컬은 어떤 곳, 장소일 수도 있고 한 지역이나 부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요 몇년 간 지긋지긋하게 로컬, 로컬 문화, 로컬크리에이터 같은 말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이 담론의 끝은 언제쯤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미 10여년 전에, 그리고 그 전에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매번 듣게 되는 답은 "이미 끝났어."이지만 말입니다. 이미 민간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정책이나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면 획일화되어 버린다는 이야기지요. 담화하고 논의하는 담론이 아니라, 소모되고 틀에 박힌 유행이 되어버립니다.
실례로 쏟아졌던 기획기사의 말미에는 언제나 '지속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가 따라다닙니다.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 이에 대한 조소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속이 가능하지 못하니까 계속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한다."라고요. 정부 지원이 끝나면 운영비를 확보하기 어렵고, 지원서를 쓸 때부터 자체적인 수익모델을 만들기 보다 사업의 방향에 맞는 계획서를 쓰기도 하지요.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라는 말이나, '사업비 얼마를 들여서 몇 명의 사업을 완수했다'라는 식의 말만 떠도는 건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모습들을 계속 기록하고 정리해 나갈 거예요. 그 의미를 분석하고 해석하면서요. 하지만 그 연구에서 몇 문장만 쉽고 편하게 떼어 사업화하다 보니 그 누구도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름만 다른, 제품에 들어가는 특산물만 다른, 어디서 본 듯한 사업이 줄을 잇고 박수 치고 사진 찍고 로컬 어쩌구 저쩌구에 그치죠. "저거 누가 했던 거 아니야?", "와, 예쁘게 베꼈네." 같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무대나 'K'를 붙여대는 것이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라벨에 K만 붙여 바꿔 달아도 브랜딩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리단길 같은 해괴한 말이 유행하는 건 다 이유가 있겠다 싶습니다.
각설하고, 지역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지역에 관하여 떠드는 이유가 '머무를 곳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커피숍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고향', '로컬', '지역' 같은 단어에 집착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단어에 집착하거나 스스로를 규정하거나 포장하려는 건 그런 선명한 이미지를 원하고 끌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이 머무는 '단어'나 '모습'도 있을 거예요.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지만, 단어마다, 문장마다 상상의 여지가 있는 영역이니까요.
전문은 다시서점 스테디오에서
https://link.steadio.co/PFY3N60me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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