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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서점/다시서점 일기

정말 우리가 잘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미래가 있습니까.

by onebookonelife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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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그저 그런 관제 행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1981년 ‘국풍81’은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가 광주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1년여가 지나 민심 수습용으로 마련한 행사였는데 관제 축제 규모에 있어서 최고 수준이었고, 이전 일반적 관제 행사 형태를 벗어보고자 1970년대 대학가에서 유행한 탈춤, 통기타, 그룹사운드 등의 청년문화 요소를 포함시켰습니다. 하지만 방식은 똑같았습니다. ‘국풍81’의 실질적 제안자였던 신군부 실세 허문도는 직접 대학 풍물패를 섭외하려 했으나 끝내 거절당하고 현직 공무원들을 대학 풍물패로 둔갑시켜 출연시키는 등 시민의 주체적 참여가 아닌 민간을 동원하는 구시대적 방상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지역 축제가 활성화된 1990년 중반은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시기입니다. 경제성장 이후로 시민의 여가생활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축제에 관한 관심도 늘어났습니다. 전문적인 예술축제도 급격하게 증가하였지만 각 지자체는 자신들만의 축제 만들기에 급급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지자체 축제를 조사하면 그 시작은 1990년대에 연원하거나 그 이전에 있던 소규모 행사의 규모를 급격하게 키운 경우가 많습니다. 축제의 비전, 정체성, 목적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급조되어 똑같이 찍어낸 행사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벤트 회사들이 지역행사를 맡아 진행하다 보니 전문적이라기보다 천편일률적인 행사들이 생겨났고 주민들의 욕구와 참여가 배제된 인위적인 축제가 남발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축제의 단순 구경꾼으로 전락했고 일부 업자들을 위한 행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예산 낭비를 넘어 행사의 경제적, 문화예술적 측면에서도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이러한 행사는 지역민의 일상과는 상관없는 상징물을 끌어와 축제에 활용하고 콘텐츠로 활용하기 때문에 지역 자원이 가진 서사를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기획자들은 단순 용역 수준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뻔한 레파토리를 답습합니다. 축제 이름만 남을 뿐 기억에 거의 남지 않은 채 휘발되는 행사들은 끊임없이 지역민의 일상과 상관없는 상징물과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오래된 지역 서사를 단순 결합시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행사로 전락시켰습니다. 여러 공동체를 담아내지 못한 채 1년에 한 번 하는 지역 먹거리 장터 정도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실제 지역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축제는 거의 적자입니다. 행안부 ‘지방재정 365’사이트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사업비 3억원 이상 전국 축제ㆍ행사는 472건. 전체 수지는 총부담액 4372억4700만원에 수익(보조금+행사 수익)이 818억1300만원. 광역 단체별로는 모두 적자입니다. 강원도는 65건에 총부담액 509억원, 수익 115억을 기록했다. 산천어 축제가 흑자인 화천군도 다른 축제ㆍ행사 2건을 합치면 적자로 나왔다. 전남은 2016년 31개의 대규모 축제 가운데 수익이 제로인 행사가 54.8%(17개)나 됩니다.

 

우리나라 축제는 95% 이상 공공재원에 의존하여 부담이 적지만, 참가자 자기 부담 비율이 높은 일본과 다르게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틀에 박힌 축제가 판박이처럼 똑같이 운영됩니다. 하루 평균 2.4개의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2019년 기준 이틀 이상의 문화관광축제는 연간 884개가 계획. 크고 작은 행사ㆍ축제까지 합치면 1만5000여건, 2014년 행정안전부 집계), 차별화된 행사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주제와 소재는 다르지만, 기획력이 부족한 탓에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비슷하게 흉내는 내지만 악순환이 되풀이 됩니다.

 

축제를 단순 이벤트로 여기는 탓에 대부분 유명 가수와 폭죽놀이 정도로 마무리하는데 이 비용은 많게는 30% 이상을 차지합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행사들이 지역 경제와 연결되지 못하고 단 몇 분을 위해서 상당한 예산이 소모됩니다. 축제의 본질적 주제와 관계없는 단순 공연 위주의 이벤트를 지양해야 합니다. 지역적 특색이 돋보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시 오고 싶은 축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면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만이라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이 정말 어려운 것이라면 시대에 뒤떨어진, 감각이 떨어진 디자인만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시민들이 축제장을 방문하게 하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들이 지역에서 적극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세부 진행을 기획이벤트사에 일임하기 때문에 빈약한 행사와 식상한 대중 공연, 먹거리 장터만이 반복됩니다. 지역에서 키운 축제 전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지역만의 축제가 기획되지 않고 진행하기 편한 행사만이 늘어납니다. 지자체는 축제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위해 재정지원과 인프라 구축, 질서 유지 등 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축제 운영 자체는 전문적이고 능력적인 조직에 일임해야 합니다. 지역적 특성과 무관한 기획이벤트 업체에 일임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지역에서 전문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지역 전문가를 지원해야 합니다.

 

일본은 이미 관광산업에 관한 고민과 해결 방안을 모색해왔습니다. 지역 축제 상품화에 성공했고, ‘마쓰리(祭り)’는 일본 관광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지역 문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관광객을 모으지 않고, 관광객을 지역으로 오게 한 다음. 지역을 보여주는 형태로 관광 형태를 확장하고 전환했습니다. 대도시 관광을 넘어 지방 소도시를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본 어느 지역을 가도 한국어 메뉴판을 볼 수 있고 촌구석 관광지를 가도 한글로 된 설명과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제작해두었습니다. 시민들의 참여도 저조하고, 외국인 참여율도 저조한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단순히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만 살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데.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축제만이 넘쳐나는데, 정말 우리가 잘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미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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