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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서점/다시서점 일기

평범하지만 역사적인 범죄자들의 시대입니다.

by 다시서점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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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벌벌벌 떨릴 정도로 추울 때면 군대에서 혹한기 뛰던 생각이 납니다. 허허벌판에서 야간 근무 선다고 이를 딱딱 거리며 악으로 버티던 기억이 온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때는 참 악랄했습니다. 어떤 간부들은 병사들을 착취하기도 했고 불합리하고 위험한 일들을 많이 시키곤 했습니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어떤 군인들은 무식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들도 참 어렸는데 무엇이 그렇게 사람을 악랄하게 만든 건지 모르겠습니다. 군대만 그랬던가,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사회가 그랬습니다. 악랄하고, 비열했습니다.


경험에 따라, 환경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요즘 군대 편하지’, ‘나는 안 그랬는데’ 라는 말을 쉽게 뱉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 당나라 군대를 다녀왔나 의심하게 됩니다.


상대방 마음 속을 들어갔다 나와도 그 속을 모두 알지는 못하겠지만, 타인의 고통이나 기억에 무관심하면서 자신은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들을 보면 군대에서 봤던 그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나치 독일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는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악마가 아니었다. 입신양명을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가 역사적인 범죄자가 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려 들지 않은 ‘생각의 무능력’ 때문이었다.”


악의 평범성.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 생각의 무능력.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이주와 학살 실무 책임을 맡은 독일 나치 친위대 간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부터 사형 집행까지 1년여 동안을 취재해 ‘뉴요커’에 연재했고, 이를 묶어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간했습니다.


‘아이히만은 아주 부지런한 인간이었다. 타인의 입장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한 것이 결정적 결함’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평했습니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오직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죽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자리에 있었어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이가 생각하기 피곤하다며 사고하고 사유하기를 멈춥니다. 판단능력을 상실한 채 악을 악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기합리화를 위한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입신양명만을 위한 지극히 평범한 철학, 예술, 노동. 그리고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이름만 드높이려는 노력. 생각의 무능력.


성실하고도 효율적으로 나치의 과업을 완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국가가 원한 도구적 이성의 노예였고, 거기서 악은 정당성을 획득했습니다. 요즘은 되려 평범하게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영민하다는 말을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평범하지만 역사적인 범죄자들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군대에서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요. 전역할 때까지 후임들에게 화를 내지 않던 사수가 기억납니다. 폭력을 지금 끊지 않으면, 밑으로 계속 이어진다던 대대 주임원사도 떠오릅니다.


이 추운 날 근무를 서고 있을 군인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옷은 잘 나오는지, 6.25때 쓰던 수통은 좀 바뀌었는지, 비열한 간부는 없는지, 밥과 부식은 제대로 나오는지, 막사용 보일러 기름은 누가 훔쳐다 쓰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그런 곳에서 악의 평범성을 배우지 않기를, 그런 행동과 사고가 당연하다 여기지 않기를, 이 혹한에 몸을 벌벌벌 떨어서라도 그런 생각들은 떨쳐버리시고 몸 건강히 전역하시길 빕니다.


다시서점,
따뜻한 봄을 기다립니다.


#다시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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