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어본다는 거만한 상상
이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간의 일. 사람과 자연, 자연과 자연의 일. 그로부터 파생되는 상상.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 그 외에 상상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야기를 만들 때면 내가 신이 된 기분이다. 인간을 배치하고, 자연을 배치하고, 마음을 배치하고, 배치한 것을 모두 연결해 의미를 만든다. 내가 만든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는 신이 된 듯하다. 저 멀리서 세상을 바라보는 신.
세상이 손톱만큼 작아 보이겠지. 그리고 신이 있는 곳을 상상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일까, 아니면 신 또한 이 세상의 한 존재일 뿐이려나. 세상의 끝과 끝 모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 이외 특별할 것 없는 존재.
이 세상의 다음을 상상하던 때가 있었다. 친구와 ‘돈 모아서 스위스에 가자’라며 안락사 기계에 함께 들어가자는, 장난과 진심이 섞인 농담을 주고받던 때. 다음 단계를 죽음으로 설정하는 젊음이라니 내 인생의 가장 우울했던 때라고 기억하지만, 그때의 나는 죽음보다 죽음의 다음을 원했다.
지긋지긋한 이 세상의 다음 생. 돌멩이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는 아주 흔한 상상. 천국 아니면 지옥. 그러다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어야 신이 의미를 가지듯, ‘죽음의 다음도 나의 존재가 있어야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쉽게 이야기하던 버릇이 사라졌다. 누군가는 정말 사라지기를 바랄 것이다.
스위스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가 줄어든 다음에는 끝없이 이 세상의 바깥을 상상했다. 보고 느낄 수 있는 일.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 사람의 욕망. 사람과 사람 간의 다툼. 자연이 주는 두려움. 자연 안에서 인간의 나약함. 또, 그리고 또... 이야기 속에서 오브제의 충돌로 의미가 생기듯 세상의 작은 무엇이 움직일 때마다 사건이 생겼다.
그 의미를 발견하고, 해석하고, 감당하는 일을 되풀이하였으나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아도, 귀신이 나오는 괴담을 보아도 세상의 일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반복되었다. 이 세상의 바깥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나의 시선은 세상을 뚫고 지나가려는 화살처럼 세상 너머를 겨누었다. 화살이 닿는 곳은 어디일까.
신은 이런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전지전능한 이 세계의 최고 초능력자로써 이리저리 사건을 해결하느라 바쁠까. 혹은 신이 이곳보다 훨씬 거대한 바깥 세상의 무언가라면, 이곳의 일들이 손톱보다 작고 의미 없는 일들로 보일까. 그 세상 사람들은 이 현상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까?
SNS에서 ‘카프카가 본 현대인은 제자리를 맴돌다 고향을 잃어버리는 존재’라는 글귀를 보았다. ‘제자리를 맴돌다 고향을 잃어버리는 존재.’ 자주 신이 되는 상상을 한다. 세상의 바깥에서 세상을 볼 수 있기를, 사람이 해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있기를. 그러다 다시 주저앉게 된다. 고향이고 뭐고 잃어버리게 되기를.
언젠가 ‘신과의 거리를 이리 가깝게 표현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글 안에서 신과 사람의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였다. 그 이후로 내 이야기에 신을 자주 끌어들이게 되었다. 작품 안에서 신은 죽음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을 비꼬기도 하고, 저승에서도 욕심을 부리는 누군가의 말을 꿰뚫어 보며 선한 누군가에게 빛과 축복을 내리기도
하였다.
신을 다루는 신처럼 굴고 있나. 이야기 속에서 신은 내가 바라는 일들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야기 속 신 또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습으로 되풀이되었다. 결국 나는 작품 바깥의 작가밖에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신이 되는 상상을 하지만 여전히 작가라는 권력으로 세상의 바깥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신 또한 사람인 내가 상상하는 욕심 중 하나일 뿐일까. ‘내가 세상을 다 안다’라는 자만심에 비롯된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죽음을 쉽게 이야기한 것처럼. 신이 되어본다는 거만한 상상이 인간의 한계라면, 인간의 몸을 가진 것이 나의
한계라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난 탈을 쓴 채 춤을 췄지, 그게 누구의 것이든’ 잔나비의 노래 <탈> 속 가사처럼 그게 누구의 것이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되어 춤을 춰보고 세상을 떠나야겠다. 죽음의 끝에 무엇이 있든, 혹은 없든. 내 존재가 사라져 전지전능한 능력을 잃은 신이 되든. 화살 끝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제자리를 맴돌다가 고향을 잃어야 되겠다.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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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4년 5월 1일
발행인 김경현, 이예울
편집인 김경현, 박현주, 이예울, 최지수
디자인 지구, 이사각
발행처 강서 N개의 서울, 다시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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