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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소식지/2024년 방방

방방 - 2024 5월호 - 오린 줄 알았는데 기러기

by 다시서점 202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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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린 줄 알았는데 기러기

Joo PARK

동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이자 기획자, 디자이너다. 셋 다 만만치 않아 하나라도 잘하면 좋겠건만, 그게 안 되어 주기적으로 역할을 바꿔가며 작업한다. 이것이 강력한 작업의 영감이 되어 느리지만 계속 행동하는 나의 원동력이다. 꾸준히 관심을 두는 키워드는 창작과 제작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남은 재료나 도구, 시안 B, C…이자 선택하지 않은 아이디어, 작업 과정에서 발견한 장면, 스쳐 지나간 이야기 등이 아주 좋아하는 소재이다. 그래서 아카이브와 콜렉션, 시리즈, 책 등 군집의 형태로 작업을 발표한다.

이번 부산물 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30년 넘게 퇴근길 붕어빵 한 번을 안 사 온 아빠가 나를 위해 샀다는 오래된 나무오리들이다. 얘네는 어쩌다가 우리집까지 흘러왔을까. 정말 역할을 다하고 부산물이 되어 팔려 온 건가, 이름을 붙이고 소중하게 돌보면 다시 가치 있는 물건이 되는가, 물건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모아 보고자 한다.

<오린 줄 알았는데 기러기>

주 작가님! (이름의 끝 자를 따 이름 대신 ‘Joo(주)’라고 부른다.) 몇년간 내가 불리는 호칭이다. 순수 미술 전공을 하던 나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미술계 어디선가 예술과 관련된 행위를 했다.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 작가’, ‘화가’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에 2019년부터 ‘문화 기획’, ‘예술 프로젝트’ 등 문화와 예술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적성에 잘 맞고 시기나 운이 좋아 동료들도 많이 만나고 무엇보다 ‘일_돈과 재주를 교환하는 행위’이란 걸 많이 했다. 원래부터 미술이란 카테고리 안의 다양한 분야를 좋아했고 기술을 익히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 또래 미술인보다 빨리 다양한 ‘일’ 소위 알바를 많이 해보긴 했지만 2019년부터는 정말 다양한 ‘일’이 많았다. 내가 불림 받는 ‘작가’란 단어와는 조금씩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민들을 위한 워크숍을 기획하거나 ‘예술’의 범주 안에 있긴 했지만 마치 환경 운동이나 문화 캠페인 활동을 많이 했고, 특히 그것을 홍보할 수 있는 디자인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전공 특성상 전시를 많이 경험해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 디자인을 주로 하다가 포스터와 굿즈, 리플릿과 도록으로 확장하면서 디자인이 주 업무가 되었다. 재미있었다. 내가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실컷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노동이 돈으로 환원되는 것이 신기했고 하다 보니 느는 ‘실력 쌓기’도, 반복해서 하는 작업에 요령이 생기는 것도 좋았다.

2~3년 동안 점점 디자인 일이 더 많아져 일과의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디자인 작업을 했다. 디자인에 쓰는 그림을 그리거나 굿즈를 만들 때나 기술을 쓰고, 점점 순수하게 하고 싶은 그림이나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멈출 수는 없어 작은 규모의 순수 기획을 하거나 작은 사이즈의 드로잉을 하기는

했지만, 들이는 시간과 공을 생각하면 작업은 부업이다. 이제는 ‘디자이너’란 호칭이 어색하지 않다. 주가 부가 되고 부가 주가 되었다.

오리 17마리

어느 날 고미술품 소장가인 아빠가 나무로 만든 오리 17마리를 집에 데려왔다. 엄밀하게 말하면 커다란 택배 상자에 17마리나 되는 정말 짓궂게 생긴 오리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배달되었는데, “너 주려고 샀어!”라며 “이거 전시할 때 모아 놓으면 너무 멋있겠지?’라고 신난 듯 외쳤다. 아빠가 나를 위해 샀다는 오리는 나의 작업실에, 안방에, 작은 방에, 여기저기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나는 오리를 좋아하지도, 아빠한테 그런 물건을 사달라는 적도 없는데 갑자기 나를 위한 물건이 한가득이다. 아마도 이런 의식의 흐름이었을 테다. 본인이 갖고 싶긴 한데 엄마에게 눈치가 보이고 알록달록 개성 있는 오리들은 미술을 하는 딸에게 잘 어울릴 테다. 핑계도 생겼으니 사자!

아빠는 전시회를 하겠다는데 대체 뭘 위한 전시를 얘기하고 있는 걸까? 전시할 계획이 있냐고 묻자 “아니!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아빠의 태도는 당당하고 야심 차다. 그리고 나의 공간 이곳저곳에서 존재감을 뽐내던 17마리의 오리들에게 점점 마음에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이 오리들을 소재 삼기로 했다.

쓸모없음의 쓸모 : 목안(木雁)

오리가 한꺼번에 왜 그렇게 많이 모여있었나 하여 조사했다. 충격적이다. 오리가 아니고 기러기란다. 이것들의 정체는 ‘목안’, ‘목기러기’ 전통 혼례 때 산 기러기 대신 쓰는, 나무로 깎아 만든 기러기란다. ‘기러기 아빠’도 여기서 왔나? 아무튼, 옛날에는 아들을 둔 집에서는 기러기를 집 안에서 기르다가 아들이 장가 가는 날 기럭아범 [雁夫]이 등에 지고 신랑 앞에 서서 갔는데 이것이 불편하여 나중에는 조각하여 채색한 나무 기러기로 대체하였다. 동네마다 관디[冠帶] · 목기러기 · 원삼 · 족두리 · 가마 등을 마을 기금으로 마련하여 공동으로 관리했는데 이렇게 많은 목안이 한꺼번에 살 수 있었던 이유도 공동으로 관리하다가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기러기인가 했더니 일평생 하나의 짝만 맺는다고 하여 신부를 향한 사랑을 상징하는 새라고 한다.

생각지도 않게 나타난 17개의 ‘목안’이 나의 중요한 오브제가 되었다. 이것은 마치 내가 디자이너가 되려고 하지 않았었는데 디자이너가 된 것 같고, 작업을 하다 보니 생긴 부산물이 좋아 그림도 그렸던 순간과 비슷한 느낌인데? 부가 주가 되는 강력한 순간이다. 순수하게 그림과 판화를 매체로 작품과 상품,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거나,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창작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부산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What to do with Leftover)

소재에 대한 나만의 생각과 개념을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을까? 디자인으로 풀면 디자인이고 그림으로 풀면 회화인 걸까? ‘부산물’ 하면 쉽게 떠오르는 쓰레기 형태의 날 것이 그대로 드러나 덩어리를 이루는 형태가 아닌 ‘이게 정말 부산물로 창작된 것인가’란 생각이 드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이런 사유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시도, 오린 줄 알았는데 기러기! 일상에서 우연히 발견된 소재가 어떻게 작업이 되고 작품이 될지를 상상해 본다.

Joo PARK (esag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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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4년 5월 1일

발행인 김경현, 이예울

편집인 김경현, 박현주, 이예울, 최지수

디자인 지구, 이사각

발행처 강서 N개의 서울, 다시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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