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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서점/다시서점 일기

나는 청년이기를 거부한다.

by 다시서점 2024.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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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년이기를 거부한다.

청년이라는 단어는 곳곳에 전단지처럼 붙어왔다. 쉽게 붙였다가 쉽게 땔 수 있게 여기저기 붙은 탓에 어떤 이들은 이렇게나 퍼주는데 왜 받아먹지를 못하느냐며 혀를 찼다. 하지만 많은 사업은 사업에 타당한, 사업의 목적에 맞는 청년의 자격을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각지대가 생겼다. 이러한 사업들 면면을 설명하려면 사실 한도 끝도 없다. 내가 주목하는 건 지원도 못 받고 공모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위치에 놓인 '청년'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상황을 역차별로 느끼거나,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여긴다. 열심히 빚을 갚는 사람들보다 포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가 더 낫다고 보기도 하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복지나 지원을 타내는 이들에 큰 반감을 갖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청년'을 위한 복지와 지원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자금을 갚고 월세를 내고 어떻게든 아둥바둥 살아가려면 돈을 버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복지와 지원은 시간과 금액이 한정되어 있고 정원도 정해져 있어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신청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이걸 노력의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단순히 노력의 유무, 질량으로 따지자면 '왜 본인은 재벌이 되지 못했나?' 그런 헛소리일랑 집어치우고, 이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청년에게 충분한 임금이 지급되었는지, 다음에 더 챙겨주겠다는 말로 착취하지 않았는지, 우리와 일하면 다음에 연락이 안 될 정도로 잘 된다며 답답한 소리를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연락이 다시 안 되는 건, 미안하지만 다시는 얼굴 보고 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청년'이라는 단어은 참으로 우스운 말이다. 2020년 8월 5일 시행된 청년기본법에 따르면 “청년”이란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 청년기본법 제정에 따라 중앙정부의 청년정책 대부분은 만19~34세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법령과 조례에 따라 청년에 대한 연령을 다르게 적용하는데, 지역마다도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다르게 적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대수명이 길어진 초고령사회, 세계 최고의 출산율 절벽, 도시와 지역의 인구격차... 그 이유는 하나가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청년이라는 말은 국민연금 수령나이만큼이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를 것이라는 거다. 의지는 삶의 맨 처음이자, 존재 그 자체, 자유의 토대 같은 것이라고들 하지만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청년이기 때문에, 중장년이기 때문에, 노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그 단어 안에 그들의 한계를 만든다.

단어는 한계와 범위를 한정한다. 말은 종종 사실이나 거짓을 가린다. 그러나 삶은 규정되기 어렵고, 우리는 혈액형성격설 같은 우생학이나 별자리, MBTI 따위로 분류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인간이다. 20대에는 20대 개새끼론, 88만원 세대 같은 말 속에 살았다. 누군가 붙여놓은 말이 과외 전단지처럼 나부꼈고 그 말이 꽤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 후로도 수많은 가름이 생겼는데 말만 갈음했을 뿐 존재의 정체성이나 존재 자체를 대변하지는 못했다. 청년을 붙였던 수많은 존재들 또한 청년을 대변하지 못했다. 진보와 보수,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청년 정치인들이 발을 내딛었지만 그들은 기성 정치인들의 구태 정치를 답습했다. 정치로 무엇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한국의 모든 시스템은 실패했다. 곳곳에 숨어있는 이권 카르텔이 존속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수정, 보완만 해왔기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맴돈다. 거버넌스 구축, 정책 확대, 공론장과 인프라 구축은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한다는 가정 하에 가능하다. 이야기만 쌓일 뿐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시민은, 청년은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피해자가 된다. 전문영역에 가짜 전문가들이 기관장으로 자리잡고, 1년 만에 전문가로 둔갑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판에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다. 공무원들은 시스템 내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고, 업무보다 요식행위에 더 친숙해졌다. 누구도 청년의 안전을,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마지막 남은 애정을 쥐어짜 말하는 이 순간도 사치다. 공감 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들에게서 최대한 빠르게 도망쳐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허명을 팔아 살아가는 사기꾼이 되거나, 교언영색하는 양아치가 되거나, 또 다른 카르텔이 되거나, 기존 카르텔에 기생하거나. 혹은 실패는 우리 모두의 실패이고, 성공은 자신의 성공이라 자화자찬하며 썩어가는 이 뱃조각에 매달려 살아가는 방법뿐이다. 언제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하나, 한국의 실패는 우리들의 실패가 아니다. 그들이 국민을 이주민을 통해 하결하려 하듯이, 국가는 이민을 통해 선택할 수 있다. 어딜가나 똑같다는 말도 들리지만,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변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자유가 보장된 것도 아닌, 본질은 바뀌지 않은 채 겉만 번지르르한 대한민국. 그 누구도 절실하지 않다. 기본을 말하면 헛소리를 답변이라고 듣게 된다.

되도록 빨리, 대한민국에서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행복의 문제가 아닌 목숨의 문제다. 모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위에 사는 것이다. 자위하면서. 또 다시 슬퍼하면서, 뭣 모르고 행복해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죽어가면서 작은 자리나 이름 따위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목숨이 하나인 줄 모르고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가면서. 결국 인지하지 못했으니 인식할 수 없다. 국가란 개념이지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국민, 영토, 주권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없다면 국가란,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도, 문화, 예술도, 우리 주변의 많은 것이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개념뿐인 것들을 실존하게 하는 건 시작이자 탄생, 행위 자체다. 언젠가라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도 개념일 뿐, 현재의 선택이 실존이다. 여기서는 생존이고.

나는 청년이기를 거부한다. 청년, 문화예술인, 청년예술인, 예술인, 어쩌구 저쩌구. 쓸데없는 말로 나의 실존과 생존을 가리는 그 말장난을 거부한다. 나는 청년이 아니라 어른이 되려 한다. 나이만 찬 애어른이 아니라, '내 것'과 '내 사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부여로 자존감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존경하는 어른은 그런 존재이고 그런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건 서로를 이해하고 무례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일 수 있게 한다. 곧은 길이 있어야 분별이 생긴다. 분별로 곧은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려하는가. 남에게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중요한가. 내가 나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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