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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서점/다시서점 일기

부자보다 겸손하지 못하고 거지보다 자유롭지 못한 채로

by 다시서점 2024.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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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 같은 말이 횡행합니다. 대화나 의견을 묵살하고 상대방을 조롱거리로 만듭니다. 신조어가 유행한 건 인터넷과 컴퓨터가 보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엽기’가 유행할 즈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햏햏’ 같은 의미 없는 말을 지어내고 어울려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누칼협’이나 ‘알빠노’ 같은 혐오섞인 표현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대부분 하오체나 쓰면서 댓글을 1등으로 다는데 더 관심있었지요.

생각해보면 요즘은 순수함보다 노골적인 욕망에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선택보다 개인을 위한 선택을 하는 건 어쩌면 슬프지만 당연한 일인지도요. 온갖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걸 볼 때마다 사회안전망이 후퇴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요.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보듬기보다 찌르는데 앞장서는 건 그만큼 약하고 겁많은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나뭇가지를 머리 위에 올려 놓은 원숭이처럼 말입니다.

“누가 그렇게 살으래?” 모두 한 곳만을 바라보고 사는 건, 정답을 정해놓고 그 방향으로 모는 건 전체주의에 가깝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고, 사람들을 울타리에 가둔 가축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예전이었으면 “이런 제도가 있는데 한 번 알아봐”라며 대안을 찾아주던 것이 ’누가 그러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는 말로 돌아옵니다.

올해는 많은 시를 읽은 대신 많은 말을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귀를 씻고 누으면, 각자의 선택이 있는 것처럼 각자의 입장과 방향과 자리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인간을 이해해보려 노력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인류에 관한 사랑을, 인간에 관한 고민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요즘 즐겨듣는 음악, 읽고 있는 책, 어제 본 영화에 관한 이야기보다 돈이나 괴로움을 이야기합니다. 부자보다 겸손하지 못하고 거지보다 자유롭지 못한 채로요.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오늘과 같은 결과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보편적인 복지는 후퇴하고 기본소득 같은 이야기는 나눌 수도 없습니다.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채널만 보고 진실을 가리거나 그걸 지식이라 여깁니다. 도파민에 중독된 채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아 즐깁니다. 언어는 상스러워지고 생각은 단순해지며 행동은 불쾌해집니다. 칼 들고 협박하는 것만큼 두렵습니다.

두려운 것은 불확실한 내일이나 힘든 하루가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떻게 파괴했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어떤 것입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단순한 대화조차 어떤 의도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파악하고 분석해야 하는 그 어떤 것입니다. 걱정되고 불안한, 숨 막힐 것 같은 더러운 긴장감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꽉쥔 주먹 어딘가에 희망이 있으리라는 기대로 버티면서. 그저 버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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