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복서
어떤 복서가 시간이라는 상대와 싸워나간 기록
시의 언어로 존재의 이유를 질문한 한 편의 드라마
도서 소개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이후 12년 만에 『어떤 복서』를 출간했다. 시집의 화자이며 시적 자아이기도 한 복서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면서 그의 싸움을 관전하듯 읽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복서가 싸운 상대는 처음엔 세상의 부조리였겠지만 4라운드, 5라운드를 지나면서 상대는 시간이라는 불패의 적수였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시집은 유한성 앞에서 사라져야 하는 인간 자신에 대한 기록임을 알게 된다. “나는 4라운드부터 흔들렸다/ 이 싸움에서 나만은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옆으로 빠졌다 정면 승부했다/ 4라운드 끝에서 계속되는 펀치에 쓰러졌다/ 하나, 둘, 엉거주춤 일어났지만/ 어두워진 시야에 흐르는 붉은 강/ 그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다 무릎을 꿇었다는 전설적인 상대에 맞서/ 판정패로 끝내자는 것이/ 수정된 내 작전이었다”(「어떤 복서」 중) 그렇다면 이 싸움은 이미 패배가 결정된 것일까? 시인은 세상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시간을 향해 헛주먹질을 날린다. 그러나 시야에 흐르는 붉은 강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난 아직도 현역이니까”아무것도 끝난 것은 아니다. 시간에 맞서 싸우는 강력한 하나의 전략이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출판사 서평
이 시집의 특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어떤 복서’가 시간이라는 상대와 싸워나간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싸움이라면 기대할 바가 없지 않을까. 하긴 선택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싸울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전체 4부로 구성된 소제목에서 그 싸움의 작전방식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1부, 어디서 날아왔니? 2부, 새 친구에게 편지를 띄우다. 3부, 새야 나랑 말 좀 하자. 4부, 그만 내려와!) 시인은 세상이라는 링 위에서 계속되는 펀치에 쓰러졌을 때 전설적인 상대인 시간을 새라고 부르면서 말을 걸고 있다. 이 시집은 시인이 시간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싸움의 내밀한 과정이라고 하겠다.
차례
시인의 말
1. 어디서 날아왔니? 어항 속 구월의 햇살 속에서 헤엄치다 부우렇다 아직도 시를 써? 시작만 있는 팔월, 한낮의 매미를 보다 회귀역 기적을 흘러가는 곡면 위를 너와 함께 걸어간다는 것 아버지보다 오래 살아가는 시계 봄으로 이어진 햇살다리에 앉다 종이집 만들며 놀기 어디서 날아왔니? 노란 병에 꽃을 꽂다
2. 새 친구에게 편지를 띄우다 눈물 비늘 연기와 아지랑이 말의 블록으로 봄을 쌓다 벚꽃동산에서 새를 만나다 거기, 그녀들이 있었다 시집이라는 램프 그래도 그 많은 시의 농부들은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새 친구에게 편지를 띄우다 열여덟과 쉰 넷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공가니라 그녀 새들의 운동장 빰빠라밤빰바 한 뼘 세상 울음의 색깔
3. 새야 나랑 말 좀 하자 새야 나랑 말 좀 하자 구름씨와 전화하다 어떤 복서 풍경만 남고 사람은 없다? 노을학습 구월 마지막 날 서북쪽으로 달려가는 어느 감독과 여배우 십일월 여행의 귀착점은 조금씩 다르다 2014, 한 해를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불 켜고 모래알 친구 어제와 오늘을 건너 꽃밭을 만들다 겨울꽃밭이 일어나 오늘이라는 감옥에서 살아가는 이유 이슬과 중력
4. 그만 내려와! 구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내가 최고 권력자야! 셀 수 없는 자동차 불빛들이 지워져가는 지평선 그 아래로 더듬이를 뻗어 헤엄치기 시작할 때 그만 내려와! 어제를 기억하는 M과 m의 불빛에 기대어 애드벌룬 연애사 2와 6의 수다 나를 만날 수 없는 지점 20140509호에서 가끔 누군가를 만났다 난 잠시 살아 있다, 그래서 불을 껐다 그리고 그 사이 내일이 없는 오늘 속으로의 항해
시인의 산문
책 속에서
상대가 죽어나갈 때까지 싸움은 계속된다 나는 4라운드부터 흔들렸다 이 싸움에서 나만은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옆으로 빠졌다 정면 승부했다 4라운드 끝에서 계속되는 펀치에 쓰러졌다 하나, 둘, 엉거주춤 일어났지만 어두워진 시야에 흐르는 붉은 강 그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다 무릎을 꿇었다는 전설적인 상대에 맞서 판정패로 끝내자는 것이 수정된 내 작전이었다
p.63 「어떤 복서」 중
풀벌레 소리에는 별빛 가루가 섞여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저 작은 몸에서 밤 깊어갈수록
해 진 방향으로 흘러가는 어둠의 물살을 어떻게 더 빛나게 하겠는가
그 강물에 실려 어디든 가고 싶은 밤이다
p.30 「눈물 비늘」
#2. 그러니까 138억 살인 너에게 유예기간을 주겠다
안드로메다 주민들이 방문한 듯 가로등이 켜지고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꼬리를 물고 헤엄친다 꼭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사이 불빛들은 모두 만나야 할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 깜빡깜박감박 쉬지 않고 수신호를 보낸다
p.79 「오늘이라는 감옥에서 살아가는 이유」 중
저자 소개
이병금 1998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고 경희대학교에서 『김지하 서정시의 생명사상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시집으로 『거울등불을 켜다(2000, 시와시학사)』,『저녁흰새(2005, 문학수첩)』가 있다. 경희대학교 강사를 거쳐 시와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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