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으니까,
거절과 선의를 믿으며 여기 조금 더 남아있겠다.
창 너머에 울창한 미래들이 넘실거려도 와 닿지 않을 때
천천히 되돌아보는 지난 시절의 거절과 선의들.
출판사 리와인드에서 발간된 네 번째 책, 『거절을 믿듯 선의 또한 믿으며』의 장르는 ‘포포에’-포엠(시), 포토(사진), 에세이(산문)-로 많은 독자들에게 장르적으로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거절’과 ‘선의’를 보다 생생하게 감흥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가 발음하는 시절과 독자가 발음하는 시절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각자 다른 시절을 보내다 이 책에서 만나 결국 우리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더 멀리 가게 된다. 그곳은 기대보다 환할지도 인사보다 어둡거나 매미보다 깊기도 하겠다. 어쩌면 눈보다 짙을 수도 있다. 당신이 여기까지 되돌아보던 미래들이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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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김학윤
올 봄에 알레르기성 비염을 처음 겪어봤습니다.
베는 힘보다 배는 힘이 더 세다고 믿어서 이로 뜯고 씹는 일보다 잠자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비 오는 날 신기 좋은 장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살구와 관련된 시를 쓴 적 있지만, 살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덜 익은 살구는 떫은데, 겉으로 보기에 익은 살구와 덜 익은 살구를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년 낙화놀이를 보고 싶습니다.
계획을 세웠다가도 금방 무너트릴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세운 계획을 무너트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이미 많이 무너트린 것 같아서 죄송해서 못 보게 된 사람이 몇 있습니다.
한 번 만난 사람은 꼭 다시 한 번은 더 만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쓰다 말다 하다
쓰다에서 끝날 예감을 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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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여는 문) 나쁜 기억은 도움이 된다 10
하나, 당신은 개를 가지고 있지 않군요 16
끝난 다음 끝이 없다면 18
다음 밤 19
저기 먼 기척 21
장례는 장래에게 맡기고 23
보호 25
풀과 개 26
모르는 상자 가져오기 28
돌아온 뒤에 듣게 되는 말 29
부서진 자리 30
우리는 잠깐 만나 끝내 자라서 32
책임 33
체하고 난 뒤 저녁 먹기 34
희고 낮은 지점 35
늦여름의 짓 37
고양이 만지는 꿈 38
보리자 나무 39
상담하는 방식 41
증명 42
건너편 불빛 44
전조와 조화 45
따뜻한 저녁 47
모양 49
지시하는 아침 51
커피 마시고 꿈 걷다 다시 커피 마시러 가는 시 53
녹는 눈발 55
둘 괜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56
인간이라는 자리 58
신이라는 자리 60
미숙한 관계 61
회전 62
비 만지기 63
개화와 조화 65
산책을 하면서 배우는 사실 67
순한 얼굴 69
귀국 71
모든 정성 72
거절을 믿듯 선의 또한 믿으며 73
환한 얼굴로 내게 달려와도 76
그늘을 쑤셔 넣는 오후 78
배회 일기 79
여기 없음 80
샛길, 기대한 것들이 여기에 없더라도 82
답장, 잠을 밀어내지 않아도 되는 곳 104
무안한 순간 112
적을 수 있는 말 113
잠수 오래 하기 115
세상과 정원사가 하는 일 116
초 118
파스타 먹는 날 119
결속, 연유하는 마음 121
스웨터 뜨기 122
노래의 작용 123
다른 방법 124
방충망과 모기향 126
외식 128
연극 이후 129
발효되는 그리움 130
그 모든 진실들 132
만류하는 동안 일어나는 사건 134
영구작동 135
평행으로 드러내는 136
생채기와 재채기 138
(닫는 문) 겨울 여수에서 내가 잊은 것 140
그리고 닫힌 문사이로_ 꼿꼿하게 앉아 있다 스루르루그주루루 미끄러지기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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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그럼에도 우리는 예감한다. 이번 일을 피한다고 해서 다음에도 피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걸. 나쁜 장면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은 하지만, 실은 내가 나쁜 장면을 선택한다기보다 나쁜 장면이 나를 선택한다. 나의 기억은 내 것이나 내가 다룰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으니까. 기억에는 늘 속수무책이다. 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 기억이 아주 잠시나마 나를 살게 한다면.그 기억 속에서 무너져가는 나도, 끝내 빠져나오는 나도, 다시 기억에 붙들리는 나도 믿어야 한다. (p. 15)
고양이 만지는 꿈
나는 네 이름도 생각해뒀어 집에 없는데도 이름이 생기는구나 무수한 대체 바라는 모습 없이 막연하고 추상적인 온기를 그려보기도 했지 코트에 넣어두고 잊은 손난로 같은 긍정 몇 번이면 불쑥 네가 소파를 뜯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했었지 그런데 네가 살아있어서 나도 살아있어서 이 일은 이뤄지지 않는다 나는 내가 더 나은 쪽을 선택한다고 넘겨짚기도 하는데 더 살아보지 않아도 안다는 두려움은 어느 곳을 경유하여 네 눈에 박혀 있는지 꿈에서 속아도 현실에서는 솎아지는 다짐 쪼그리고 앉아 차 밑을 들여다보면 혹시 난 들어올려야 하는 미지근한 어둠을 발견하는 게 아닌가 무서우면서도 그 긴장을 놓아버리고 싶어서 미친 사람처럼 내가 생각해둔 이름으로 너를 부르면서 네가 울지 않기를 기대하고 정말 네가 울지 않으면 불안해했지 (p. 38)
거절을 믿듯 선의 또한 믿으며
물수제비나 같이 해 볼걸
두 번밖에 튕기지 않던 돌을
세 번 튕겼을 때
저녁이 와도
다음 저녁을 기다렸고
부는 바람이 아니라
손 모아 비는 바람
자주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철봉에 매달릴수록
힘에 부쳤다
이제 그만 내려와도 괜찮다는 말을 들어도
조금 더 버티고 싶었던 고집은
가장 오래
매달릴 수 있었던 처음은
굳이 쪼그려 앉아
틈을 쪼개 피고 있던
꽃을 관찰하던 사람
지난 약속이
칠 벗겨진 오리배처럼 호수에 떠 있는 채로
정겨운 오후도 있었다
포장한 초콜릿과
아이들이 없던 놀이터는
햇살이라는 말이
해의 살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조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진을 찍고
간직하는 게 재능이고
다시 만났을 때 웃을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면
서로는 잘못 발음되곤 했다
너로
너로 인해
오래전에 떠난 여행에서
부재중 전화 몇 통과
침묵 사이로
기적도 가끔 기절하고
쓰지 않은 기적은
사라지기도
대단치 않은 재주라고 했지만
자랑도 하고 싶었다
내 손에 있던 돌을
멀리 보내는 게 가능했으니까
어떻게든 사정이 있을 거라며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는
네 말을 들으면서
이번 저녁은 길게 느껴졌다
발 가까이 물살이 올라왔다
(p.73~75)
오래 살아 끝을 보고 싶니.
여기가 끝이라고 말하면 너는 믿나. 여긴 오는 잠을 밀어내지 않아도 되는 곳. 계절을 세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세어놓은 계절을 잊어버리는 곳. 눈이 쌓이지 않아서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는 곳. 어디서 사람이 아닌 것이 짖어대도 그 방향을 헤아리기 버거운 곳. 사람이 사람을 안아도 체온을 가늠할 수 없는 곳. 각자 집으로 돌아가도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을 감각하지 않아도 되는 곳. (p.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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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판형 : 131*199
총 페이지 : 160p
표지 용지 : 랑데뷰 울트라 190g
내지 용지 : 백색모조 100g
제본 : 무선제본 세로형좌철
후가공 코팅 : 무광 코팅
정가 : 12,000원
초판 1쇄 발행일 : 2024년 7월 1일
ISBN : 979-11-978295-2-9(03810)
출판사 : 리와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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