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간결한 문체로 정열의 노예가 된 한 남자와 그를 지배하는 어린 소녀를 등장시켜 관능의 극적인 측면을 드러낸 피에르 루이스의 소설이다.
“신이 원한다면 나를 줄 수 있지만,
남자들이 원한다고 줄 수는 없어요. 나중에.”
<욕망의 모호한 대상>의 남자는 여자의 모순적인 두 얼굴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종당하고 기만당하지만 단 한 번도 침범당하지 않은 여자의 몸으로 침범해 들어가고자 한다.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이해 불가의 영역인 타인의 내부를 향한 맹목적인 갈망을 다룬 이 소설은 조셉 폰 스턴버그, 줄리앙 뒤비비에, 특히 루이 브뉘엘 등의 감독들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수전 손택이 포르노그래피의 문학적 성과라 평가한 소설 <세 자매와 어머니>와 함께 피에르 루이스의 대표소설로 꼽힌다. 이 소설 외에 피에르 루이스의 짧은 이야기 세 편을 함께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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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피에르 루이스 Pierre Louÿs
1870-1925 프랑스 시인, 소설가.
10대에 이미 수백 편의 시를 쓴 피에르 루이스는 고답파와 상징주의 시인들의 문학 모임에 참여하며 말라르메, 르콩트 드 릴 등 당대 거장들의 영향 아래 고대 그리스 문화와 고전 미학에 매료된 첫 시집 <아스타테(1892)>를 스물두 살에 발표한다. 이어 잡지 ‘라 콩크’를 창간하여 무명의 폴 발레리 등 젊은 시인들을 위한 무대를 제공한다. 그즈음 오스카 와일드는 희곡 <살로메>를 피에르 루이스에게 헌정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소재인 고대 그리스 소녀의 동성애와 삶을 기록한 산문시 <빌리티스의 노래(1894)>로 큰 성공을 거둔다. 후에 친구인 드뷔시가 세 편의 시에 곡을 붙였다. 출간 당시, 피에르 루이스는 이 시집을 고대 그리스 시의 번역본이라 소개하여 전문가들조차 속았지만, 결국 피에르 루이스의 창작임이 드러났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궁중 생활을 그린 소설 <아프로디테(1896)>는 35만 부가 팔리는 막대한 성공을 거두며 플로베르 이후 가장 완벽한 프랑스어 산문의 출현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오스카 와일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썼던 것처럼 예술, 아름다움, 완벽성의 숭배,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애착은 풍부한 상상력과 어우러져 환상을 풀어놓고 언어와 유희하며 유머, 패러디, 패티시, 그리고 관능과 성애의 깊은 탐닉이 어우러진 가장 세련된 프랑스어 산문을 역사에 남겼다.
옮긴이
김영신
프랑스어 전공. 출판기획과 프랑스어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호모포비] [유해한 남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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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욕망의 모호한 대상
새로운 즐거움
X양의 고해
가짜 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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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피에르 루이스는 시대의 공동(空洞)이다. 그 공동에서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언어가 출현한다. 보들레르의 시대이자 드레퓌스의 시대, 부르주아지에 절대 자유가 허용되던 시대이자 교회와 전통이 완강한 지배를 행사하던 시대, 극단의 쾌락과 엄격한 도덕이 서로를 떠받치며 음습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던 시대, 가장 평등한 시대이자 최악의 불평등 시대, 바로 벨 에포크라 불리는 황금기, 그 시기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피에르 루이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능적인 감각이었다.
소년기에 이미 수백 편의 시를 쓰고 상징주의와 고답파의 내로라하는 시인들 속에서 성장한 그에게 글쓰기는 하나의 쾌락에 속한다. 플로베르 이후 가장 완벽한 프랑스어 산문의 등장은 그 쾌락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가 평생 집착했던 사진, 그리고 실제로 경험하는 관능적 쾌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피사체, 곧 여인을 바라보고 묘사하고 느끼며 이미지를 수집했다. 여러 필명을 쓰거나 자신의 창작품을 번역작이라 발표할 정도로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자신이 거둔 당대의 거대한 문학적 성공조차 부담스러워했고 종국에는 작품을 발표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레즈비언의 사랑이나 육체적 관능에 집착한 시와 소설은 고대 그리스 문화와 신화적 세계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과 어우러질 뿐 당대의 도덕과 관습에 대한 전복적 상상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레즈비언 소녀의 사랑을 이야기한 산문시로 문학적 파란을 일으켰으나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피에르 루이스는 사후에 출간된 소설 <<세 자매와 어머니 Trois filles et leur mère>>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포르노그래피 작가로도 알려졌다.
작품의 출판이 좌절되거나 사후에 출간되었을 만큼 당시의 도덕관념에서는 쉽사리 허용되지 않을 소재에 집착한 피에르 루이스는 프랑스 국민을 양분했던 드레퓌스 사건에서 왕당파와 교회가 주도한 반드레퓌스 진영에 속한 보수주의자였다. 세기말의 어두운 그림자나 다가올 전쟁에 대한 불안, 현실의 추악함이나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 또는 역사의 진보는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본 세계는 고대 그리스 시대였고 지금 이 ‘아름다운 시대’의 모순은 그를 자극할 수 없었다. 그는 직관적으로 쓰고 사진을 인화하고 피사체를 경험하는 감각으로 한 시대의 문학적 성과를 달성했다. 감각이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는 시기, 곧 그에게서 현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타인을 통해 자기 내부로 들어가려는 현대적 열망
넘쳐나는 감각은 자의식을 압도하거나 혹은 휘발시킨다. 관능의 매개이자 피사체일 뿐인 여성을 향한 끝없는 갈망과 관능을 문자와 사진 이미지로 붙잡고 그 대상을 느끼며 그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시도였으므로 감각과 피사체를 향한 강박은 더욱 강화되고, 그만큼 더 피사체에 집착하는 악순환으로 빠져들어 자신에게 무감해지고 자신을 폐쇄한다.
이 소설 <<욕망의 모호한 대상>>은 한 남자의 집착과 그를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세비야의 카니발에서 앙드레 스테브놀은 우연히 미모의 안달루시아 여인을 만난다. 그녀와 다시 만나기로 한 다음 날 산책 중에 돈 마테오와 마주치고 콘차에 관해 의견을 구한다. 마테오는 자신이 콘차로 인해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 정열의 노예이자 콘차의 꼭두각시가 되었던 시간을 털어놓는다.
여자의 모순적인 두 얼굴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종당하고 기만당하는 남자는 단 한 번도 침범당하지 않은 여자의 몸으로 침범해 들어가고자 한다. 그것은 남자가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그리고 이해 불가의 영역인 타인의 내부를 향한 맹목적인 갈망이자 집착이다. 이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사랑엔 감정도 관계도 역사도 인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아름다운 시대’가 만들어낸 텅 빈 곳이다. 거기에서 피사체를 향한 맹목적인 시선, 타인을 통해 자기 내부로 들어가려는 현대적 열망이 자라고 있다. 그 욕망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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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선생. 그녀는 위험해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여자란 말이오. 나는 그녀가 죽는 날 신이 그녀를 용서하지 않으리란 기대를 품고 그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_욕망의 모호한 대상(38p)
“그녀의 눈과 손가락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온몸이 하나의 얼굴처럼, 얼굴 그 이상으로 풍부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얼굴은 마치 쓸모없는 물건처럼 어깨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갈라진 엉덩이에 미소가, 물결치는 허리엔 두 뺨의 홍조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가슴은 두 개의 커다랗고 검은 눈처럼 앞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_욕망의 모호한 대상(127p)
“마테오, 나는 네가 정말 싫어. 얼마나 내가 당신을 증오하는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야. 당신은 궤양과 오물, 기생충으로 덮여있어. 당신 피부가 내 피부에 닿는 순간은 혐오스러울 뿐이야. 신이 원한다면 지금이 마지막이야. 지난 14개월 간 나는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도망쳤어, 그런데 당신이 나를 다시 찾아냈고 늘 당신 손이 나를 만지고 당신 팔이 나를 짓눌렀어. 당신 입이 나를 찾고. 역겨워. 밤에 당신이 내게 키스하고 나면 나는 매번 창밖으로 침을 뱉었어. 당신이 내 침대로 들어올 때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오, 내가 당신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신에게도 빌었어. 지난겨울 일곱 번이나 기도했어. 내가 당신을 망친 그다음 날 당신이 죽기를. 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나는 이제 신경 쓰지 않아. 나는 자유야. 어서 꺼져, 마테오. 내가 할 말은 다 했어.”_욕망의 모호한 대상(146p)
선생, 끝까지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거짓 고백이 더는 나를 속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내가 그녀를 신뢰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면 내 안에 일상적인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 새로운 구실을 만들어냅니다. 보통의 여자들이 ‘나를 오래오래 사랑해줘’라고 반복하는 그런 저녁에도 나는 아주 놀라운 문장을 듣곤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마테오, 당신은 여전히 나를 때려줄 거지? 약속해 줘. 당신이 나를 아주 제대로 때려 줄 거라고. 나를 죽여줘. 말해 줘, 당신이 나를 죽일 거라고!”_욕망의 모호한 대상(160p)
“다시 말하지, 아메리카를 발견한 건 아리스토텔레스였다고 나는 확신해. 그리고 이건 무모한 주장이 아니야. 역사적이고 명백한 사실이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어 (그의 책에서 네가 확인할 수 있어). 그는 ‘헤라클레스 기둥들 너머 서쪽으로’ 인도를 향한 길을 찾는 데 조언을 했었지. 콜럼버스가 착수한 계획이 바로 그거야. 발견의 영광은 최초로 생각해낸 뇌의 것이지, 그것을 실행한 자에게 주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_새로운 즐거움(198p)
“자,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지나치게 신경이 예민한 소녀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을 비난합니다. 그들은 실제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죠. 그들의 마음이나 머릿속에 죄를 품고 있다면 아마 무의식적으로 이미 죄가 실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악덕을 자신의 것으로 여깁니다. 그들은 어느 작은 살롱의 소파 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머릿속에서만 벌어진 장면일 뿐입니다.”_X양의 고해(214p)
뭘 해야 하지, 지금? 그 작가를 찾아간다면 나를 어떻게 대할까? 이렇게 야비한 이야기를 쓸 정도로 타락한 남자가 내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보여줄까? 더욱이 그 누가 이 모든 게 나에 대한 복수나 음모가 아니라고 말할까? _가짜 에스더(229p)
발자크 씨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출판사를 찾아갔다. 직원이 내게 물었다. “누구신가요?” 내 이름을 나 스스로 밝힐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는 무례하게 대답했다.
“아, 채권자? 글쎄….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발자크의 주소를 묻는다면 당신은 모른다고 말할 겁니다.”_가짜 에스더(231p)
피에르 루이스 | 김영신 옮김 | 분야 : 문학_프랑스 소설│원서명 : La Femme et le Pantin
128x188mm | 262p│ 값 14,800원 | ISBN | 979-11-971456-1-2 03860
발행일 : 2021년 5월 10일 | 발행처 : 불란서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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