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소설은 ‘다시 시작’에 대한 나의 고민과 의심, 바람과 기대가
한데 뒤엉키고 녹아들어 변형의 과정을 거친 끝에 다다른 불확실한 대답들이다.”
속초의 바다와 달빛 아래서 펼쳐지는 회복과 치유의 풍경,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 『여름의 한가운데』의 작가 주얼의 첫 연작소설
『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과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지난 과거가 쌓이고 중첩된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애틋하고도 쓸쓸한 감정을 담담하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그려내었던 작가 주얼이 세 번째 작품집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을 발표하였다. 「최선의 선택」, 「그해 겨울 눈 덮인 해변에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그리고 표제작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까지 여기에 수록된 네 편의 소설은 각 소설의 배경과 인물들이 서로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연작소설의 형태이다.
표제작의 제목이기도 한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은 수록된 소설의 공통 배경이 되는 장소인 속초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소설 속에서 속초는 인물들이 과거의 좌절 또는 아픔을 다시 직면하는 곳이자, 그로 인한 상처가 회복되고 치유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마법 같은 순간은 속초의 바다와 파도, 청초호와 영랑호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어두운 밤을 걷는 인물들을 가만히 비춰주는 달빛이 있기에 가능하다.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에는 작가의 전작들처럼 흘려보내지 못한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전처럼 무력하게 과거의 늪 아래로 침잠하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용기를 내 ‘다시 시작’하기 위한 작은 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 발걸음이 비록 조심스러울지언정 주저하지는 않는다. 이미 그들의 마음은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에서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그들의 발걸음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슴 속에 남아있는 작지만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주얼
2020년 1월부터 독립서점 부비프의 글쓰기 모임을 통해 단편소설 습작을 시작하였다.
소설집 『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2021)과 『여름의 한가운데』(2022)가 있다.
2022년 1인 출판사 <이스트엔드>를 설립하여 창작과 출판을 함께 하고 있다.
<목차>
추천의 글(박은지│부비프 대표)_005
최선의 선택_015
그해 겨울 눈 덮인 해변에서_053
파도에 몸을 맡기도_115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_153
작가의 말_207
<책 속으로>
아마 앞으로 현정씨 앞에는 계속해서 문이 나타날 거고, 그 문을 통과해야만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내 생각에 중요한 건 문을 열고 발을 내디디는 그 행위 자체인 것 같아요. 그 끝이 어딘 지가 아니라.
_「최선의 선택」, 34쪽
하얀 눈에 파묻힌 시내를 통과해 속초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 하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 덮인 해변을 마주했다. 길게 펼쳐진 하얀 설원의 저 너머로 짙은 푸른빛의 파도가 넘실거렸다. 그 풍경은 생경하면서도 신비로웠고, 왠지 모르게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마치 눈 덮인 해변과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가 이 세상의 모든 비애와 모순을 포근하게 감싸며 모든 게 다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것 같은 위로의 풍경이었다.
_「그해 겨울 눈 덮인 해변에서」, 104쪽
그건 바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분명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 자연스럽게 파도에 몸을 맡기면 되는 순간. 걱정을 조금 내려놓고, 두려움에 겁내지도 말고 힘을 뺀 채 자신을 이리저리 흔드는 파도에 올라타 둥둥 떠 있어야 하는 순간. 그러면 파도는 어딘가로 자신을 데려다준다. 그곳은 분명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곳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아도 걱정할 건 없다. 그저 주저하지 말고 또다시 파도에 몸을 맡기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_「파도에 몸을 맡기도」, 142쪽
“속초에 다시 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연우의 질문에 서준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아마도, 보름달이었어. 날 다시 이곳으로 오게 만든 건.”
_「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 193쪽
<출판사 서평>
어두운 밤의 시간에 서 있는 듯해도 실은 모두가 환한 달빛의 영역 아래에 있다.
이 책을 펼친 당신도 ‘달이 뜨는 동쪽’을 가볍게 걸었으면 좋겠다.
달빛이 당신을 비출 것이다.
과거는 언제부터 과거가 되는 걸까.
시간의 흐름을 기준 삼으면 모든 순간은 시시각각 과거가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지금도 다음 문장 앞에선 곧바로 과거가 되어버리고, 눈을 깜빡이는 순간 그만큼의 과거가 새로 만들어진다.
그럼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마음에 난 물길을 다 지나간 일, 지나간 생활만을 과거라고 한다면. 그리하여 더이상 현재를 억압하지 않는 기억만을 과거라고 부른다면. 오직 그것만이 과거라는 이름을 부여받을 때, 얼마나 많은 기억이 일순간 현재가 되어버릴까.
주얼 작가의 연작소설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은 두꺼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현재는 흘려보내지 못한 과거가 중첩되어 두툼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구멍을 지니고 살아간다. 사춘기 시절 겪은 누나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거나(「그해 겨울 눈 덮인 해변에서」), 갑작스러운 연인과의 이별로 새로운 사랑 앞에 망설이기도 하고(「최선의 선택」), 애써 당도한 현재에 대한 의문이 지난 삶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기도 한다.(「최선의 선택」, 「파도에 몸을 맡기고」) 누군가는 늦게 알아차린 마음을 가슴 안쪽에 간직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
구멍은 외투 안쪽에 덮여있다. 외투를 입은 그들은 시청 공무원으로, 도시계획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카페 사장으로 잘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외투를 벗는 순간 바닥 깊은 심연이 드러난다. 소설은 그 심연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캄캄한 구멍 안에는 오래된 과거, 그러나 조금도 녹슬지 않은 생생한 과거가 흘러가지 못한 채로 고여 있다. 그것들이 모두 현재를 이룬다.
과거가 현재 안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될 때 사람들은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 잊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신에게 기대기도 한다. 여기 실린 소설 속 인물들은 직면하기를 택한다. 직면의 장소는 ‘달이 뜨는 동쪽‘, 속초다.
네 편의 소설에서 속초는 직면 이후의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그것이 일견 타당하게 느껴지는 건 바다 때문일 것이다. 균열을 품은 사람이 마침내 바다 앞에 설 때, 그 틈으로 바닷바람이 통과하면 무언가 일어난다. 가라앉거나 떠오르거나. 그것은 무한에 가닿는 경험이다.
호흡도 편안해진다. 밀물과 썰물은 들숨 날숨과도 닮아있어서, 바다에서 사람은 바다의 속도로 숨 쉬는 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삶의 어느 시기에는 바다와 마주 보는 시간이 필요해지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바다를 찾는다. “나는 바다와 결혼 한다”고 말한 카뮈처럼. 그 모든 걸 바다의 마법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은 바다의 자기장 안에서 회복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다를 품은 도시 속초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구멍 안쪽의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 올리고, 이런 말을 듣는다.
“분명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을 테고, 그러니 그건 그때 현정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아니었
을까? 결과로 판단할 수는 없어요. (...) 아마 앞으로 현정씨 앞에는 계속해서 문이 나타날 거고, 그 문을 통과해야만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내 생각에 중요한 건 문을 열고 발을 내디디는 그 행위 자체인 것 같아요. 그 끝이 어딘 지가 아니라.”
「최선의 선택」
“지금도 잘하고 있어.” “오빠 탓은 아니야.”
「그해 겨울 눈 덮인 해변에서」
“저는 가출했으니까 이제 집에 안 갈 거예요. 집에 안 가고 제가 가고 싶은 데로 갈 거예요. 거기에서 계속 있을 거예요. (...) 아저씨도 가출했으니까 가고 싶은 데로 가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어떤 시절은 꼭 들어야 할 말을 들음으로 인해 건너 가진다. 그 말은 타인의 입을 통해 들려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책 속의 문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 건 한 시절을 적극적으로 건너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소설 안에서 회복의 기제는 자연의 언어(바다)와 인간의 언어로 동시에 밀려온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바로 달빛이다.
네 편의 소설에서 달은 수시로 등장한다. 밤하늘에 실재하는 달로, 액자 속 사진으로, 달을 닮은 조명의 형상으로 인물들의 주위를 맴돈다. 그들을 비춘다. 삶이 캄캄할 때, 어두운 밤의 시간에 서 있는 듯해도 실은 모두가 환한 달빛의 영역 아래 있다고 말을 건다. 희미할지라도, 달은 변함없이 떠오른다고. 바로 동쪽으로부터.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의 계절은 모두 겨울을 그린다. 겨울은 봄을 앞두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야기 속 인물들이 맞이할 봄을 상상한다.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흘려보낸 그들의 봄은 전과 다를 것이다. 이 책을 펼친 당신도 현정과 하윤처럼, 지후와 연우처럼 ‘달이 뜨는 동쪽’을 가볍게 걸었으면 좋겠다. 달빛이 당신을 비출 것이다.
박은지│부비프 대표
<서지 정보>
저자: 주얼
펴낸곳: 이스트엔드
가격: 12,000원
출간일: 2023년 4월 28일
판형: 135*200mm
쪽수: 212p
ISBN: 979-11-977460-3-1
분류: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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