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창에 ‘청년’을 검색해봅니다. 1896년 도쿄 유학생들의 잡지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청년’이라는 말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문화운동의 주역을 일컫기도, 기성세대 및 그들의 가치관으로부터 단절하는 것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을 연령으로 정의할 수없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청년‘. 사람들은 청년이란 단어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응당 청년이란 이러이러 해야 한다‘ 같은 틀을 넘어, 청년이란 단어 뒤에 숨겨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검색 창에서 스크롤을 내리자 무수히 많은 청년지원사업들이 쏟아집니다. 대학을 나와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가능할 법한 사업부터 기회와 경험을 준다는 말로 적은 돈에 시간을 써야하는 사업, 조건을 내걸어 신청하지 못하고 낙담하게 만드는 사업… 여기에 들지 못한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청년이 아닐까요.
어제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닌 것 같다.”,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책들만 있는 것이다”, “인간을 필요한 도구로만 보기 때문에, 청년을 수단이나 동원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필요하고 동원 가능한 효율적인 인원들만을 청년으로 본다.”
검색 창에서 와는 다르게 2,30대 청년들이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청년을 검색하면, 청년의 경제활동부터 고립청년, 결혼페널티, 청년 취업, 저소득층에 인색한 청년지원 예산 등이 뜹니다. 그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는지, 같은 또래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모든 세대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괴로워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무작정 쉬거나 무작정 일도 않하면서 돈만 많이 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면 그들은 소수일뿐이고 우리 사회에는 이미 이 시대를 이해하고 체감하는 영민한 청년들이 많습니다.
검색 창의 결과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결과가 다른 만큼. 딱 그만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간극이 좁혀졌으면 좋겠습니다. 단어에 가려진 사람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시 사람이 죽어나가야 이해할까?“, ”아니, 얼마 전에도 돌아가셨지만 사람들은 관심없잖아“ 어제 서점 공간에서 영화 ‘태일이’를 보기 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 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들 중 누군가는 이 슬픔을 이해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포기하지 않으며, 기를 쓰고 시를 쓰며 노래하는 것입이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정부의 '노조탄압'에 항의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해 전신 화상을 입고 숨진 건설노동자는 ‘양회동’ 님입니다. 대한민국 자살율은 한국이 덴마크보다 3배, 10대부터 20대, 30대 사망 원인 1위, 40·50대 사망 원인 2위. 어쩌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요.
故 양회동 열사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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