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타일박스 안에서 / 구연정
128×188mm
108page
10000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변기에 앉았고,
좁은 화장실이 답답해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느긋한 엉덩이를 하고서는 말이다.
느리고 가벼운 엉덩이.
그는 가끔 변기 위에서 사색에 빠져버리는 때가 잦다.
아마도, 절정의 순간까지 견뎌야 하는 적막이 길어지다 보니,
엉덩이만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재밌는 일이다.
변기에 앉아 똥을 싸면서 ‘나의 삶이란…’라며 생각하는 사람이라니 말이다.
나는 그런 연유로 글을 쓴다.
심각함은 글로 배출하고, 잠시 떨어져서 되돌아보고, 그렇게 내가 내 삶을 바라보고
다독여주고 비웃기도 하고 털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가끔 풀어냈던 글들을 모았다.
나는 내 글이 따뜻한 물줄기 속에서 눈이 감기듯이 읽혔으면 좋겠다.
이 책을 시작으로 한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부디 나의 은밀한 피로가 씻겨 내지길 바란다.
<책 속의 문장>
- <나의 서른으로부터> 중에서 -
지금도 나는, 내가 스스로 일을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 지난 과거에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 인한 도피인지, 원래부터 나는 그래야만 했던 사람인 것이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아. 어떤 것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앞서 나는 항상 무엇으로부터 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막상 피해서 디딘 땅의 모양은 알 수가 없고, 옆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돌멩이로 땅에 선을 그어서 그것을 길로 여기고 위태롭게 걸어가는 것 같아.
- <타일박스 안에서> 중에서 -
거울은 뿌예져 있었다. 나는 거울을 손바닥으로 비볐다. 맨얼굴의 모습이 잠깐 보였다가 금세 다시 없어졌다. 그러면 나는 다시 또 손으로 비비고 잠깐 드러난 얼굴을 쳐다봤다. 어제 모습이나 오늘 모습이나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몇 년 전의 사진을 보면, 매일 봐왔던 같은 얼굴이었는데도 어째서 다른 걸까. 언제 이렇게 얼굴이 변해버렸을까. 나는 매일 달라지는 그 차이를 왜 보지 못할까. 오늘 변해버릴 얼굴의 미묘한 차이를 나는 절대 내일은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얼굴이 오늘의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같은 얼굴이라고 착각하는 무능력한 시각 인지능력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어제와 오늘이 아쉽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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