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온 마음으로 분투한 기록들”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 / 오수영]
<책 소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온 마음으로 분투한 기록들”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은 저자 오수영이 2023년 여름과 겨울 동안 발행한 이메일 구독 서비스 ‘생활일지’의 요약 합본이다. 생활일지는 직장 생활과 출판 활동을 무리하게 병행하다 번아웃과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저자가 치료와 휴식을 위해 모든 걸 잠시 중단한 채 시작된 이야기다. 평범하고 안전한 미래를 꿈꾸며 몸에 맞지 않는 유니폼을 입고 생업에 전념하는 동시에, 작가라는 꿈도 끈질기게 부여잡은 오랜 시간들의 결과는 모순적이게도 행복과 안정이 아닌 자기 자신의 상실이었다.
그렇게 저자는 인생의 또 다른 성장통을 겪는 동안 숲길을 산책하며 내면의 소란을 정돈해 구독자들에게 서른한 통의 긴 이메일 편지를 보냈다. 상담과 치료를 통해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부터 새로운 삶을 위한 다양한 생각과 시도, 그리고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솔직한 이야기까지. 어쩌면 저자가 심적으로 가장 취약했던 그 시기를 누구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관통하고, 마침내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과의 보이지 않는 연결과 믿음 덕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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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오수영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쓰고 만든다. 한동안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했고 그보다 오래 작가를 꿈꾸며 살았다. 저서로는 『조용한 하루』 『사랑의 장면들』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 『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아무 날의 비행일지』 『긴 작별 인사』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진부한 에세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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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7/ 첫 번째 편지(그날의 새벽) 15/ 두 번째 편지(상담의 시작) 27/ 세 번째 편지(퇴사하지 못하는 이유) 41/ 네 번째 편지(약물 치료의 시작) 53/ 다섯 번째 편지(끝이라는 이상한 예감(上)) 65/ 여섯 번째 편지(끝이라는 이상한 예감(下)) 79/ 일곱 번째 편지(나를 분석하는 시간) 93/ 여덟 번째 편지(휴직의 시작) 105/ 아홉 번째 편지(새로운 휴식의 시작) 119/ 열 번째 편지(걱정의 쓸모) 133/ 열한 번째 편지(태백에 다녀왔습니다) 147 열두 번째 편지(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옥) 163
열세 번째 편지(북페어와 사람들(上)) 177/ 열네 번째 편지(북페어와 사람들(下)) 191/ 열다섯 번째 사람들(산책하는 마음으로) 203/ 열여섯 번째 편지(모든 변화는 시도로부터) 217/ 열일곱 번째 편지(사진과 기억) 233/ 열여덟 번째 편지(나태함의 재발견) 243/ 열아홉 번째 편지(한국의 서비스직 종사자) 255/ 스무 번째 편지(그럼에도 불구하고) 265/ 스물한 번째 편지(우연과 노력) 277/ 스물두 번째 편지(각자의 소셜미디어) 287/ 스물세 번째 편지(한계를 지우는 마음으로) 297
스물네 번째 편지(제주에서 보내는 편지) 307/ 스물다섯 번째 편지(평범한 일인 가구) 321/ 스물여섯 번째 편지(아기와 나) 331/ 스물일곱 번째 편지(오래된 책을 읽는 밤) 341/ 스물여덟 번째 편지(안녕 나의 숲길) 351/ 스물아홉 번째 편지(다시 시작하는 순간) 361/ 서른 번째 편지(의미를 부여하는 일) 371/ 서른한 번째 편지(언젠가 우리 다시) 385/ 생활일지 후일담 397/ 이 책을 함께 만들어주신 친애하는 독자님들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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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겉으로는 잘 다려진 근사한 유니폼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했을지라도 내면은 입사 이후로 단 한 번도 풍랑이 몰아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단 한 순간도 글쓰기를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을 만큼 혼란스러웠습니다. 물론 여유가 있는 삶 속의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지금의 제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건 회사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간절했던 꿈이 바로 앞에서 손짓을 하는데 제가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P.33
궁지에 몰려야만 용기를 내는 사람도 용감한 사람일까요. 궁지에 몰리지 않았을 때도 용기를 낼 수 있어야 비로소 용감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적어도 퇴사라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리다가 반강제적으로 튕겨 나가듯 퇴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추구하는 삶과 정반대의 길로 향하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무모하리만큼 가차 없이 퇴사하는 것. P.42
나 번아웃이었구나. 나 우울증에 공황도 앓고 있는 환자였구나. 그것도 모른 채 일상의 의미를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나를 가차 없이 채찍질을 해댔구나. 네가 지금 그렇게 나태하게 있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당장 일어나서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누가 봐도 그 숨 막히는 생활의 결과는 탈진이었을 테고 저는 이미 내려진 정답처럼 그 탈진 속에서도 무엇이라도 해내야 한다는 강박적인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P.59
예민하다는 말, 유별나다는 말, 특이하다는 말, 이상하다는 말. 상대방이 자신과 조금 다르다 싶을 때 너무도 쉽게 단정 짓는 말들이기도 하잖아요.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쩌면 가장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기도 해서 좀처럼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분주하게 살다 보면 마음의 여유가 점점 사라져서 나 자신만 챙기기에 급급해지니까요. 그래서 상대방을 자기 기준대로 편리하게 단정 지어야만 다가올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P76
지금은 엄마에게 투정 부릴 수밖에 없었지요. 지금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까요. 원래 스스로 알아서 잘해왔지만 이번에는 그게 잘 안되서 이런 안색으로 엄마를 찾아왔는데. 행복한 길을 가라고 이미 예전에 말해줬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세상을 모르지 않는 사람이라 현실이 너무 두려워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계속 말을 건넸습니다. 엄마도 정답만을 달라는 제가 조금 괘씸할까요. 엄마도 알겠죠. 답은 이미 제 안에 있다는 걸. 다만 직면해야 할 차례라는 걸. P.112
휴게소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언제 다시 출발할지는 그다음에 생각해볼 것. 의무나 부담이 아닌 열망과 취향으로 휴식을 채워볼 것. 감기에 걸린 마음을 인정하고 자극 대신 다정한 포옹을 줄 것. 사회적인 나이와 통념 대신 온전한 나로서만 살아볼 것.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하고 싶고, 나를 뜨겁게 하는 것들을 되찾을 것. 어른의 꿈 따위는 비웃음을 사는 세상에서 다시 한번 꿈을 향해 몸을 던져 볼 것. 현재를 미래를 위한 희생양으로만 삼지 않을 것. 목표를 높게 세울지라도 그곳까지 가는 주변의 풍경을 충분히 둘러보며 만끽할 것. 최악을 생각만 하지 말고 차라리 최악이 되어볼 것. 그리고 다시는 남들의 소식에 흔들리며 자신을 착취하지 않을 것. P.114
낭만이 사라진 자리를 제테크가 꿰차고 있는 듯한 요즘 세상은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을 벌이는 청년들에게 정신 못 차리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가벼운 말들을 늘어놓습니다. 그렇지만 늘 사람 냄새나는 곳에는 시대가 떠미는 길과는 반대로 걷거나 그런 것쯤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사람들의 수많은 발자국들로 이뤄진 움푹한 세상이 있습니다. 계산에 무지하다거나 인생을 허투루 살아서 다른 길을 걷는 게 아닌 단지 애초부터 주류의 세상에 관심이 없었거나 관심을 끊고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지요.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인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나의 기준으로만 타인의 삶을 재단하려 합니다. P.156
어쩌면 소셜미디어는 고립된 자신을 세상과 연결해 주는 구원인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옥이 아닐까요. 어떤 방식으로든 그곳을 드나들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이제는 막연한 외면이나 부정보다는 적극적으로 저만의 활용법을 익히려고 합니다. 이토록 자유롭고 매력적인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 또한 바로 자기 자신이니까요. P.174
구태여 누군가 자신의 창작물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가끔은 자신의 창작물이 성장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신이 없을지라도, 날마다 창작을 시작한 자신을 원망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일을 반복할지라도, 이렇게 창작하는 사람이,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오직 나 하나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내 눈으로 분명히 목격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북페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창작자와 특별한 친분이 없을지라도 내 눈에 보이는 이토록 수많은 고독한 창작자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커다란 위안이 되어줍니다. 그 위안을 페어가 끝난 일상으로 가져가면 일종의 연결이 되겠고 또 믿음이 되겠지요. 연결되었다는 그 믿음이 비록 착각일지라도, 그 착각이 나를 계속해서 창작하게 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P.200
인생이 산책이라면 저의 산책은 아직 숲길의 초입일 겁니다. 산책을 즐기는 사람은 시계와 걸음 수만 바라보며 기록하듯 걷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산책로에 수시로 멈춰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닐까요. 잠시 벤치에 앉아서 선선한 바람을 쐬며 물도 마시고 같이 걷는 사람과 간식도 나눠 먹으면서요. 때로는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앞에서 이끌어 주거나 뒤에서 밀어주면서, 하지만 꼭 오늘 더 걸을 필요는 없으니 다음을 기약하기도 하면서요. 인생에는 바로 그 ‘다시’라는 방법이 있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잊고 삽니다. 결코 다음은 없다는 절박한 다짐이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서 산책할 여유조차 사라지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음은 어디에나 얼마든지 있습니다. 절박하고 조급한 마음속에서만 다음이 없을 뿐이지요.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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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빼곡하게 가득 채우는 누군가의 성공사례가, 누군가의 처세술이, 그리고 누군가의 진심 어린 조언이 일정 수준까지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자신에게도 좋은 사다리가 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할 문제입니다. 게다가 단순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과 직접 실행하며 겪어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고도 하고요. 저 또한 한쪽의 입장만을 맹신한 채 아무렴 현대인이라면 탈진이 제맛이라는 생각으로 일상을 비행과 출판으로 더욱 바짝 조여둔 채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P.246
서비스직 종사자를 대하는 서양의 ‘전반적인’ 문화는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며 지불한 값에 대한 정당한 등가교환만을 기대할 뿐 그 이상의 회사와 종업원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기대하지 않는 반면,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는 ‘한국식’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며 일단 값을 지불한 이상 등가교환을 넘어선 암묵적인 상하관계의 형성을 기대하는 듯했습니다. P.259
직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호해줄 수 있는 건 정부가 아닌 직원들의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회사라는 것 또한 분명하지만, 어쩐지 고객과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직원에게 등 돌리지 않는 회사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듯합니다. 청춘과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부은 회사가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될 때의 배신감과 허무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감정일 겁니다. P.261
물론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도 많았을 테지만 그들의 선택 또한 비난보다는 존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겁이 많은 사람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했거나 아니면 언제까지나 포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선택하고 도전하며 살아가는데 그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건 너무 치사한 일이 아닐까요. 결국 합격해 낸 장수생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축하보다는 다행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라도 된 게 정말 다행이라고. 그치만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자신뿐이라서, 자신 만큼은 온 마음으로 스스로를 축하해 줬다고 합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남들의 생각이나 시선 같은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 않았다고요.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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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노력에 비해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운 좋은 사람일 뿐이라며 괄시하기도 했었지만 살다 보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결정적인 순간의 우연과 행운에서 비롯되는 듯했습니다. 요행이란 노력하지 않고 운을 바라는 태도를 말하는 것일 뿐 꾸준한 노력이 동반된 상태에서 운을 바라는 건 요행이라는 말 대신 목표나 희망이라는 말을 쓴다는 걸 배웠지요. P.280
책장을 뒤적이는 일이란 흘러간 기억을 더듬거리는 일과도 같습니다. 자신이 읽었던 수많은 책으로 가득한 책장이란 이를테면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의 물성을 지닌 기억 저장소일 텐데, 그렇다면 그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빼내어 폐지함에 버린다는 건 자신의 기억 한 조각을 완전히 지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P.344
마을 곳곳의 골목들을 걷다 보면 한숨 대신 심호흡에 익숙해져요. 한숨이 불안을 토로하는 방식이라면 심호흡은 내면을 정화하는 방식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맑은 기운이 온몸을 순환하며 불안과 걱정의 잔여물을 세척하면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오래된 실내 공기를 환기시킬 때 청량한 바람의 첫 숨을 들이마시는 느낌처럼요. P.400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었습니다. 젊은 날의 치기인 걸 알면서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못했어요. 모두가 반대하는 일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할 때도 있었고요. 평범하고 안전한 길을 걸으며 행복하게 살자는 다짐을 수없이 반복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젊음은 어느새 지나가고 있는데 치기는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서 사랑하는 일이 되었고, 사랑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이제는 그 일로 새로운 삶을 살아 방식말가려 합니다. 작가로서 더 많이 알려지지 않더라도, 지금이 저의 최대치의 성과라 할지라도, 혹여나 글쓰기를 미워하게 된대도, 선택의 결과를 모두 감당하며 살아갈게요. P.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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