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주인공 친구의 짝사랑, 저조한 시청률의 드라마 오래된 노래와 낡은 책을 애정하는 당신에게”
모두가 반짝거리는 걸 사랑한다면 나 하나쯤은 그렇지 않은 것을 사랑하고 조명하겠다는 작가 가랑비메이커.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은 드라마 속 주인공보다는 주인공 친구에 가까운,
웃음보다는 뒤돌아 눈물 짓는 날이 잦은, 자주 흔들리고 종종 잊혀지는 얼굴들과 이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극히 평범하고 사소하여 이따금 놓쳐버렸던, 그 시절과 그 사람들을 서사의 주인공으로 데려왔다.
우리의 영화는 이렇게 시작할 테니까.
<책 속으로>
나는 여전히 이런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나 하나쯤은 반드시 기억해야겠다 싶은 것들.
르게 지나는 걸음들 사이에 홀로 멈춰 서서 문장을 솎아내게 하는 장면들은 언제나 빛바랜 것들이다.
오래되어 낡아 보이지만 사실은 더 갈 데 없이 무르익은 것들, 깊어진 것들.
—- p.30 <산책>
일곱 번 넘어지기도 전에 여덟 번 일어서겠다던 어린 날의 다짐은 어설픈 흔적만이 남아서 넘어진 자리에서
나름의 합리를 찾고 앞서 걷는 이들에게 보냈던 존경의 시선은 타오르는 시기에 사그라져버리고
곁에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두 손은 굳은 팔짱을 풀 줄 모르고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함께 울다가도
돌아서서 자기 위안을 찾게 되는 나는 지금,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비겁한 나이를 지나고 있다.
—p37 <비겁한 나이>
서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건 언제나 사람을 읽는 시선이에요.
서사 속 인물들이 얼마나 근사하게 비춰지는지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가 중요해요.
오늘의 아름다움과 명성은 <다음 이 시간에> 얼마든지 무너져 내릴 수 있고 서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를 테니까요.
최종회에 다다를 때까지.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시작으로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
그들의 삶이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르죠.
—45p <그녀가 드라마를 보는 방법>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우리 삶이란 서사의 위기일지 모른다는 거야.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내가 쓰는 이야기에도 위기가있어.
그 삶을 모조리 휩쓸어버릴 것만 같은 페이지들이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얼굴이 절망에 사로잡히는지.
위기에 삶을 잡아먹힌 채 영영 그 시간이 끝나지 않을까 두려워해.
모두가 우리처럼. 그러나 나는 알아.
착실히 몇 페이지를 채워 나가고 나면 그들에게 넘겨주었던 시련에도 끝내 끝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절정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내가 그들의 삶을 쓰고 있으니까.
그들을 위기에 빠트려 놓은 건 나지만, 누구보다도 그들의 삶을 소중히 생각해.
그들에게 서사를 부여한 게 나니까.
끝까지 그들의 삶을 지켜낼 거야. 마침내 몇 줄의 결말만이 남겨지겠지.
—79p <삶이라는 서사>
왜였을까. 난 늘 그랬다.
어떤 서사를 만나든 주인공보단 주인공 친구의 절절한 짝사랑을 응원했다.
잘 보지도 않는 드라마에 간만에 꽂혔다 하면 언제나 저조한 시청률의 것이었고
한 달에 몇 번이고 극장을 찾는 내게 경적을 울리던 것은 언제나 아무도 모르게 오르고 내리던 영화였다.
—231p <마이너적인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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