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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서점/입고소식

양 백 마리 / 정선엽 초단편소설집

by 다시서점터미널 202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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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백 마리. 초단편소설집입니다. 모두 29편의 짤막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정선엽 초단편소설집 <양 백 마리> 다시서점에 입고되었습니다.

 

 


작가 소개

제 이름은 정선엽입니다. 당선이나 수상과는 상관없이 소설을 씁니다. 자비출판으로 장편소설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에도 등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존재라는 건 잘 몰랐습니다. 이름만 알고 실체는 몰랐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현 시점에선, 타의든 자의든 그 안에 들어가 살아갈 수 없다면 그 옆에서 늘 의식하거나 아니면 안 보이는 척 무시하며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멀리 떠나버리든가요. 긴 분량의 글을 쓰는 걸 좋아합니다. 중학생 때 읽었던 10권으로 된 《은하영웅전설》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합니다. 요즘엔 짧은 소설들에도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좋아할 수 있을까? 써질까? 라는 생각으로 무심코 손을 대보았던 게 계기였습니다. 소설 쓰기는 결국 내 자신이 바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물론 도움이 되지만, 그러나 그 역시 바탕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기억, 상상, 가치관, 시각, 경험, 기호, 개성, 성향, 취향, 습관, 태도 같은 것들이 이루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료조사를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쓰는 것보다는 일단 떠오르는 대로 쓰는 걸 좋아합니다. 구상은 하지만 구성은 하지 않습니다. 독서나 공부가 부족해도 글을 쓰는 데엔 가지고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편입니다. 쓸 것을 밖에서 찾기보단 안에서 찾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추구합니다.

책 소개

양 백 마리. 초단편소설집입니다. 모두 29편의 짤막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네 편의 이야기 중 각각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미친놈들/

“미친놈.”

이번엔 남자가 툭 쏘아대듯이 대꾸했다. 여자는 남자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피식 한 번 웃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눈도 깜빡거리지 않을 인간들한테 뭘 기대해? 차라리 교회에 가서 기도나 해라.”

“미친놈.”

“절에 가서 공양을 올리든지.”

“미친놈.”

“다 관두든지. 미친놈아.”

“그래서 다 관뒀어. 나 잘했지?”

남자가 미소를 보였지만 여자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친놈.”

남자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아닌 것 같애.”

미소 끝에 남자는 그렇게 소리 냈다. 고개까지 가로저으며.

“그렇게 잘 돼가고 있지 않아. 무엇이든지.”

남자는 남은 맥주를 단숨에 털어 넣고서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잠깐 편의점 갔다 올게. 너도 한 캔 더?”

여자가 “어.”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도 또 설마 오백은 아니겠지? 예전에 삼백 밖에 안 되던 걸 이틀에 나눠서 마시던 애는 어딜 간 거지? 도통 보이질 않네. 난 걔를 만나려고 오늘 왔던 거였는데. 저기요, 미안하지만 좀 찾아줄래요?”

“미친놈.”

여자가 남자에게 살며시 입을 맞췄다.

카아츠가(슬래쉬)는 말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볼 때,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는 또 하나의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개인적인 소견이다.

- 소장님, 수신입니다.

카아츠가 말했다.

그의 눈을 쳐다봤다. 또 그러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섬뜩했지만 다행히 미소까지 잃어버리진 않았다. 나는 어서 눈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상당히 주의하고 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금방같이 갑자기 얘길 하면 부지불식간에 그쪽으로 눈길이 향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

- 전방을 주시해주게.

그러곤 수신된 메시지를 읽었다. 학회참석 일정이었다.

그나저나 이제는 적응이 될 때도 된 게 아닐까, 하지만 아직 먼 것 같다. 1000년쯤은 더 지나야 하는 걸까. 하긴 이제 겨우 300년 남짓이다. 그와 함께 한 시간이 말이다.

그는 눈이 둘 달린 돌연변이다. 나는 가끔 그의 얼굴을 보며 외계인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눈이 둘 달리고, 손이 두 개인 괴물체. 설마 다리마저도 둘은 아니겠지?

내 성기는 너무 무겁다/

“화장실 좀 먼저 사용할 수 있을까요?”

2층에 있다고 가르쳐주면서 벽에 걸어놓은 열쇠를 건넸다.

여자가 아래층으로 내려간 사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음악을 틀었다.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커피포트에 적당량을 부었다. 찬장선반에서 인스턴트커피스틱을 하나 빼서 뜯었다. 오늘은 스누피가 그려진 머그컵을 골랐다. 개집 지붕에 벌렁 누워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어제도 이걸 고른 것 같다.

호호 불면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랩탑으로 입고할 물품목록을 작성했다. 딜도(울트라슈퍼빅, 딸기케익맛), 딜도(도깨비방망이, 카라멜마끼아토마카롱맛), 딜도(코브라뱀, 열대우림코코넛맛), 딜도(바나나, 바나나우유맛), 딜도(송이버섯, 아기분유맛). 여기까지 써넣었을 때 찰랑찰랑 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문을 밀고 실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발걸음. 굽이 상당한 구두를 신었는데도 아주 작은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거기 아무데나 두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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