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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서점/입고소식

진동하는 것들 / 이인현 소설

by 다시서점터미널 202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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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 진동하는 것들 - 저자 : 이인현 - 판형 : 128 x 188 - 페이지수 : 172P - 가격 : 12,000원

 

- 책 소개글

현실과 납작하게 붙어 있다가 이 삶이 어디로 가나 생각하다가 적막한 마음을 흔드는 진동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천천히 물드는 불안, 감정, 결의는 시절을 견디게 해주었고 씨앗처럼 자리 잡고 있다가 바위를 부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삼 년에 걸쳐 네 편의 소설로 썼다.

 

이 소설들은 어떤 시절을 담고 있다. 나는 그 시절이 의미하는 것들에 대해서 단번에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길고 때로는 불확실한 언어들을 열심히 찾아 헤맸다. 다행히도 나는 그 시절을 봉할만한 적당한 용기를 찾았다. 용기는 그릇이기도 하고 씩씩하고 굳세며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기도 하다. 밀폐되지 않은 용기 덕분에 시절은 이제 천천히 썩어갈 것이다.

 

 


- 목차

물든 밤 천천히 썩는 나는 너의 바깥에서

진동하는 것들

 

* 각 소설의 사이에는 독자가 소설과 잠시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사진을 삽입하였습니다.

 

- 책 속의 문장들

 

<물든 밤>

"바닥에 앉아 비가 천장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비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눈을 감고 천문대가 있는 산 전체를 뒤덮는 비를 그렸다. 비는 한 방울도 내 몸에 닿을 수 없다, 지금 이곳은 안전하다, 어떤 것도 나를 해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온 세상이 푹 젖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17p

 

"어두운 밤도 사실은 짙은 파란색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베이지색 가방을 몇 년 더 메고 다녔는데 부모님도 친구들도 가방이 왜 그렇게 물들었냐고 물어보지 않았어요. 동생만 제 가방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궁금해했어요. 저는 가방이 밤에 물들었다고 말해주었어요. 밤에 내리는 비는 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요. 동생이랑 저는 그때부터 비 맞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흠뻑 모든 게 다 젖을 정도로 비를 맞고 어딘가를 통과하면요. 비가 밤의 색을 가지고 와요." – 34p

 

<천천히 썩는>

"나보고 미래계획이 있냐며 자신은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살 기회가 있었는데 대출이 무서워서 안 샀다가 그 집이 지금은 10배가 올랐다며, 그때의 판단 미스로 인해 자기가 아직 강북의 5억 대 아파트에 사는 것이라며, 젊어서 딴 생각하지 말고 땅을 보는 눈을 키우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업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데 그렇게 농업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가 경매에 나오는 경기도 임야를 몇백 평 사놨다가 도로가 뚫리기를 기다리면, 그게 바로 인생에서 성공하는 길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다." - 64p

 

"엄마는 정말 착하고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고 나를 정말 사랑하지만 엄마는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꼰대 같으면서도 엄마를 영원히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짜증만 부렸다. 지긋지긋해. 엄마 잔소리도 지겹고 돈도 지겹고, 자본주의도 지겨워죽겠다. 지금의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77p

 

<나는 너의 바깥에서>

"PIAO FENGZHEN. … 영현은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러보다가 그를 그냥 풍전이라고 불렀다. 풍전 씨. 풍전등화라는 말을 아십니까?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기가 찾아왔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그저 바람이 앞에 와 있는 것만을 느낄 수 있고 불은 언제 꺼질지 모릅니다. 풍전 씨. 바람이 느껴지십니까?" - 97p

 

"아이가 가진 과거와 미래의 상처들을 저울질하며 그저 아이가 그 모든 상처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아이가 아니기를 바랐다. 혹시 어쩌면 자신이 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인생에 개입해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팽이를 잘 친다고. 네가 원하면 팽이를 더 잘 칠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자신도 과거의 언젠가는 타인의 삶을 충분히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고 영현은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나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지." - 109p

 

<진동하는 것들>

"새삼스레 우주의 광활함에 압도된 것은 아니었다. 우주를 보자 선이 떠올랐다. 내가 어떻게 선을 잊을 수 있었을까? 선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공아. 창문을 열어봐, 달이 엄청 크고 밝아. 방범 쇠창살로 막힌 창문을 열었을 때 달빛이 칸칸이 나뉘어 들어왔고 내가 선을 돌아보자 선이 웃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는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때, 정말이지? 응, 너의 말은 틀린 적이 없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항상 내 말을 믿어주기 때문이야." - 134p

 

"모든 것을 같이 나누고 있다고 믿었던 시간들에는 하루 만에 균열이 생겼다. 선은 내가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에 혼자 발을 디뎠다. 나는 선이 건너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선도 혼자였던 세계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토록 추운 세상에 그래도 연결되어있는 것은 나였기 때문에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도 둘의 시간과 공간은 자꾸 벌어져만 갔다." - 1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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