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변호사에서 작가로 넘어가는 여정, Side A 이야기’
- 오랜 시간, 꿈 대신 주어진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좋아하는 글에 대한 마음은 결코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저는 책을 읽고 글 쓰는 게 좋아요’ 수줍게 입 밖으로 낸 말은 뜻밖에도 ‘그럼 너는 법대에 가면 되겠네-’의 결론으로 돌아왔다. 법대에 입학해 고시생이 되었을 때에도, 사법연수원에서 경쟁에 지쳐가는 순간에도 문득, ‘이 길은 행복하지 않겠구나’ 하는 예감이 스쳐 지나가곤 했다. ‘이러다가 변호사가 되면 어떡하나-’ 하고 그토록 두려워하던 변호사가 실제로 된 후에도, 동경하는 마음은 어딘가로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2020년부터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어서, 변호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었어요”라는 말을 하고 다니는 동안 전염병의 시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나’는 30대 중반에 다시 고시생 모드로 접어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신림동 고시생 시절을 버티게 해 주었던 긴 이름들이 생각났다. 책과 영화, 드라마의 제목들이. 그 이야기들에 기대어, 결코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던 ‘좋아하는 마음’을 가만히 되짚으면서, 수없이 서성이던 날들과 기존 경로에서 스르르륵 벗어나는 순간의 이야기를 ‘A면’(Side A)에 담았다. 이제 ‘눈싸움을 멈추고 눈사람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저자 소개>
문여정
눈 내린 날 태어나 늘 새해의 기분으로 생일을 맞는다.
시험도 소송 서면도 하나의 글이라 생각하면서
서울대 법학과, 사법연수원, 로펌의 시간을 보냈지만.
2017년을 기점으로
뒷면이 앞면이 되는 레코드 판처럼
출판사 하하밤(2020)을 만들고 좋아하는 글을 쓰며
Side B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할배의 영향으로 곧잘 경상도 사람이라는 오인을 받고
할머니의 방침에 따라 여전히 신나면 궁둥이 춤을 춘다.
할머니와 할배는 Side B의 시간에 계시지 않지만
망울진 A면을 타고 온 지금의 리듬은
모두 두 분에게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한다.
<목차>
Prologue. 망울지는 밤
The Real Prologue. 눈덩이를 굴리는 시간
Single Room No.701 : ‘Someone’s atelier’
생의 유효기한 … 〈사운드 오브 뮤직〉
밤의 화미레스ファミレス에 … 『애프터 다크』
Single Room No.105 #1 : 신림 2동, 자취의 시작
우리 방울 … 『빨강머리 앤』
가만히 느끼는 온기 … 〈아멜리에〉
이기적인 아이의 소원은 … 〈기적〉
Single Room No.105 #2 ... 온전한 홀로
□에 기대어 ■ 버튼을 … 〈중경삼림〉
푸른 숨을 내쉬며 … 두 번의 제주 올레 여정
‘숲’에서 만나기로 해요 … 〈연애시대〉
Single Room No.436 : 일산, 우주 속 먼지
제멋대로 쫓아오는 무언가 … 『홀리가든』
오래전 입력된 낭만 (feat. 기차 여행) … 『청춘의 문장들』
하늘 높이 오르는 100%의 공처럼 … 〈수박〉
Single Room in BOQ : 2개월 전주
머글과 변호사의 하얀 돌 … 『해리 포터』
찬란한 사각지대 … {해바라기}
The Next Episode … 〈Sex And The City〉
Single Room No. JSS 가지 않기로 한 길을 바라보며 … 『어제 뭐 먹었어?』
어떤 장벽에도 불구하고 … 작은 영화관
이번 생의, 작은 균열 … 〈해피 아워〉
Epilogue. 스르르륵, 몸을 기울여
The Last Epilogue. 눈사람을 당신께
<책 속으로>
퇴사를 하고 2020년부터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되었다는 말을 늘어놓았지만 돌아보니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있었다. 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미래에 수고를 들이는 일. 이것은 내게 익숙한 상황이었고, 나는 30대 중반에 다시 고시생 모드로 접어들었음을 실감했다. 그것은 모두에게 우려 섞인 응원을 받고 다시금 부모님의 무거운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었으며 무엇보다, 매일 불안의 시선을 느끼는 일이었다.
- ‘Prologue : 망울지는 밤’ 중에서
1막에서 아이 1이, 저는 책을 읽고 글 쓰는 게 좋아요- 이야기했을 때 그럼 너는 법대에 가면 되겠네- 하고 불쑥 좁은 길이 등장했다. 법률가라는 직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때였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인상 쓴 얼굴이 힘들어서 실없는 소리를 하고 웃음에 안도하던 고등학생 아이 1은 다시 이야기했다. 저는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분위기가 싫은데요? 이야기 끝에 누군가는 기분이 나빠지고야 마는 상황이 영 불편한데요...? 다시 정해진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말대답을 하는 걸 보니 역시 법조인의 길이 맞겠다고.
- ‘밤의 화미레스에’ 중에서
아홉 살이 되어도 상상 속 진짜 아빠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매주 두세 번씩 우리 집에 찾아오는 엄마의 아빠, 나의 할배가 있었다. 아이스크림 파르페를 나에게 처음으로 사주고 기차 여행의 낭만을 심어준 사람. 계란밥을 만드는 법과 생선 가시를 바르는 법을 알려주고 불의 뜨거움과 물의 무서움을 일러준 사람. 그리고 내 첫 눈맞춤의 상대였던 사람.
- ‘우리 방울’ 중에서
어떤 날은 11시 정각에 공원의 가로등이 모두 꺼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느지막이 평소처럼 페달을 굴렀다. 갑자기 캄캄해진 공원은 조금 무서웠지만 전조등이 밝히는 불빛을 따라 〈E.T.〉의 자전거처럼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호수 위를 넘어 경쟁과 견제가 없는 곳으로. 산뜻하게 달을 가로질러 저 멀리 나아가고 싶었다.
- ‘숲에서 만나기로 해요’ 중에서
네모 칸 안에서 목적이 있는 이해와 암기를 거듭하던 때에, ‘글 문(文)’으로 시작하는 필명을 짓고 망연히 내 안의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의 청춘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붙잡힌 시공간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나의 청춘은.
- ‘오래전 입력된 낭만’ 중에서
그렇게 1인의 우월감이 수인의 우울감을 빚어내는 동안, 한 가지 쉽게 간과된 것이 있었다면 그런 와중에도 계속 조건을 성취하려 애쓰는 마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 정도가 50%든 78%든 간에 100%에 미달하는 결과는 동일했을지라도 그 안에는 점진적 성장과 스스로 독려하는 희망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때 우리가 100%의 조건 성취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사다리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래서 매번 실망하는 중대장을 만족시키려는 데에 자책과 반성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많은 시간을 돌아오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 ‘하늘 높이 오르는 100%의 공처럼’ 중에서
그런 눈을 던진 다음, 또 날카롭게 벼려진 하얀 돌을 맞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혈을 하고 나면 몸 곳곳에 퍼런 자국이 남았다. 눈뭉치 모양을 한 하얀 돌은 회사 안에서도 날아다녔고 우리는 모두 하얀 돌을 눈이라 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 ‘머글과 변호사의 하얀 돌’ 중에서
그 방 안에서, 갑자기 업무 이메일이 오거나 냅다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언제나 심장이 뛰었지만 역시나 가장 무서운 순간은 사람들이 ‘변호사님-’ 하고 나를 부르는 때였다. 그 호칭에 네- 라고 대답하면 내가 정말 변호사인 줄 알까봐, 모든 질문에 답을 안다고 생각할까봐 두려웠다.
- ‘Single Room No. JSS : 가지 않기로 한 길을 바라보며’ 중에서
행복한 시간을 찾아 나서는 길은 낯선 미지의 영역이었지만 그 반대의 행로에 대해서는 나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 길이 내가 걸어온 길이었으므로. 행복이 없을 것 같은 방향으로 반신반의하며 계속 나아온 길. 신림동 독서실에서 무거운 법서를 펼쳐놓고 법률과 판례를 들여다보던 순간 문득 이 길은 행복하지 않겠구나- 예언처럼 생각이 스쳤지만. 직접 걸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고, 행간에 고여 드는 생각을 떨쳐 냈었다. (...) 그 결과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이제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 ‘이번 생의, 작은 균열’ 중에서
<출판사 서평>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이미 멀리 와 버렸다 해도
‘동경하는 길에 대한 마음’은
결코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여정’이 책과 글을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한 순간, 뜻밖에도 네비게이션에는 ‘법조인’이라는 목적지가 설정된다. 의외의 경로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하고, 변호사가 되기까지 ‘여정’은 제법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법과대학(신림) - 사법연수원(일산) - 로펌(종로)의 ‘Single Room’에서 홀로 통과해 온 청춘의 시간들은, ‘여정’이 좋아하던 책과 영화, 드라마의 이야기에 기대어 이따금 색채를 얻게 된다. 붙고 떨어짐의 시기를 지나 다시 끝없는 경쟁에 돌입하고, ‘눈싸움’의 현장에 닿기까지 1990’s - 2010’s의 기억들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해피 아워’에 이르는 이야기들과 함께 눈덩이처럼 행간을 누빈다. 그 사이사이에 자리한 연이은 상실의 조각들도 한데 포개어져, 사각사각- 지면 위를 구른다.
칸막이 책상처럼 삼면이 모두 가로막혀 있는 듯한 현실에서 스물두 살의 ‘여정’은 ‘언젠가 글을 쓰게 된다면...’ 하고, 막연한 미래를 생각하며 ‘글 문(文)’자로 시작하는 이름을 만들어 둔다. 그리고 모든 시험을 마치고 변호사의 일상에 몸을 맞추어 가고 있을 무렵, ‘여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마음속 눈덩이를 감지하게 된다.
나는 자연스레 SATC(’Sex and the City’) 주인공들 중 미란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 캐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때마다 ‘I’m her lawyer’ 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변호사 미란다에게. 그런데 이상하게도 먼 곳을 응시하는 눈으로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본인을 소개할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는 눈을 감으며 ‘I’m a writer’ 이라고 말하는 캐리에게 자꾸만 마음이 기울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우면서도 흡족해 보이는 저 표정은 무엇인지, 노트북 화면 너머 지그시 향하는 먼 시선은 어떤 것일지 문득문득 마음이 쓰였다. S가 아닌 N의 표정으로 나를 소개하고 현실을 영위해 나가는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The Next Episode’ 중에서)
드디어 낭독회 날이 다가왔을 때 나는 저녁도 거르고 버선발로 횡단보도를 지나, 눈앞이 환해지는 무대를 내내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차분하고도 명징한 목소리를 듣고, 서로 몸을 기울여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심코 생각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조근조근 단어를 고르고 상대의 침묵에도 가만히 행간을 헤아리는 이들 편에 서고 싶다고. 내가 저편으로 넘어갈 수만 있다면. (‘Single Room No. JSS : 가지 않기로 한 길을 바라보며’ 중에서)
"동경하는 길을 바라보는 마음과
주어진 길을 좋아하려 애쓰는 마음,
그 사이에서 좌우로 흔들리던 청춘의 날들"
사람들은 용기라 말하지만, 실은 ‘눈덩이’에 대한 이야기를 굴려 가면서, 늘 강 건너 저 편을 향하던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이번에도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머뭇거리며 서성이던 동경의 마음과. 비록 주어진 길일지라도 조금씩 정을 붙여가며 나름대로 좋아해보려 애쓰던 마음. 그 사이에서 좌우로 흔들리던 날들을 ‘청춘’의 시간이라 되돌아보며, ‘여정’은 누군가의 오랜 머뭇거림과 힘겨운 턴이 당신의 일상에 작은 이완이 되기를 소망한다. 부디 당신은 이렇게 긴 시간을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눈싸움을 그치고, 눈사람을 만드는 이야기』의 A면(Side A)에는 ‘여정’이 좋아하는 작품들 외에도, 『비로소 나의 여정』을 떠났었던 ‘여정’의 첫 홀로 여행과 첫 자취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러고 보면 청춘의 날들은 거의 모든 것이 ‘처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 밖의 많은 ‘첫’ 이야기들과 함께 ‘여정’이 처음으로 시도해 본 그림들을 즐겨 주시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나의 눈사람을 당신께 보낸다.’
<서지 정보>
제목: 눈싸움을 그치고, 눈사람을 만드는 이야기
저자: 문여정
쪽수: 272p
판형: 129*188mm
가격: 17,000원
발행처: 하하밤
발행일: 2024년 10월 28일
ISBN: 979119692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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