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없이 닥쳐오는 불행을 대하는 방식으로 나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책 소개>
글의 궤도 안에 삶을 밀어 넣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독백,
윤평 소설집 『문창과생 윤평씨의 일일』
“나는 무례가 판치는 세상을 엿 먹이고 싶었고,
닳아빠져 빤빤해진 예의와 친절을 일삼는 치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문창과생 윤평씨의 일일』은 저자와 동명인 문예창작학과 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집이다. 작가를 꿈꾸며 대학교에 입학한 주인공 ‘윤평’을 통해 ‘문예창작’과 ‘생(生)’의 이야기를 9편의 연작소설로 풀어낸다. 각 단편은 이야기의 볼륨에 맞는 각기 다른 분량으로 쓰여 있다. 각 단편이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는 한 권의 소설집인 동시에 메타픽션으로 쓴 저자의 예술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윤평'은 어떤 인물일까?
"태어나 처음 꾼 꿈이 천재(「천재를 찾아라!」)"인 그는 "한번쯤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내게도 일어나길(「틈」)" 바라고, "고유하고 독창적인 스타일로 꼭 쓰고 싶은 이야기(「병원에서 보낸 한철」)"를 간직한 인물이다. 고급 와인을 마시며 "돈의 맛. 즐길 수만 있다면 즐기고 싶은 맛(「Born to be bone」)"이라 생각하고, 자주 시니컬하나 "종종 약간의 감상주의에 빠지는 탓(「퍼즐」)"에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며, "누군가를 골려주고 싶었고 실컷 가지고 놀다 내팽개치고(「살가운 사이비」)"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곧잘 삐걱거림을 느끼고, 한번 삐걱대는 그 찰나에 한없이 깊은 낭패감으로 다이빙(「Fall in L……ibrary」)"할 정도로 낙담에 취약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일단 할 수 있는 걸 하자(「무슨 일 있어?」)"고 말하는 인물이다. 아홉 획으로 그려내는 윤평의 초상화는 독자들로 하여금 동시대 문청의 생활과 삶을 엿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을 못 느꼈는지. 마지막 한 획은 어디로 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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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윤평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글만 쓰고 사는 삶을 연구 중이다. 소설집 『문창과생 윤평씨의 일일』을 썼다. 책이 잘 돼서 언젠가는 『소설가 윤평씨의 일일』도 쓸 수 있길 바란다.
‘윤탐’이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장편소설 『이후의 숲』을 출간했고, 와글와글 프로젝트 네 번째 이야기 『마이 구미』(앤솔로지·공저)에 단편소설 「스노볼」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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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틈 _7p
천재를 찾아라! _25p
병원에서 보낸 한철 _25p
Born to be Bone _79p
퍼즐 _108p
살가운 사이비 _128p
Fall in L……ibrary _155p
무슨 일 있어? _187p
내 무덤의 주소 _217p
발문 _239p
작가의 말로도 소설을 쓰지 _2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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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혼자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보기도 했다. 가령 낭독 속도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목소리를 크게도 작게도 해 봤지만 노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몇몇 기사를 빼먹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요령을 피워 낭독시간을 줄일까 생각해 봤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매 기사를 빠짐없이, 또박또박 정확하게 읽었다. 직업 정신이나 첫날의 고맙다는 인사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좀, 불쌍했다. 산송장이 되어서도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다 알고자 하는 게 왠지 서글피 느껴졌다. 이러한 나의 연민은 높이 평가할 게 못 됐다. 연민이란 본디 차갑다. 차가운 연민을 팔팔 끓이고 후후 불어 따뜻한 친절인 마냥 떠먹이는 일은 아름답지 않다. 역겨운 일이다.
(「틈」 p.17-18)
아주 어릴 때 어른들은 내게 이 길로 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 좀 더 커서는 문 앞에서 호객하는 여자들에게 손목을 잡히지 말라고 했다. 평생 드센 놈들을 상대한 여자들이라 완력이 장난 아니라고들 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이 옳다면, 그것은 단순한 완력이 아니라 그간의 삶이 지속해온 관성일지 모른다. 나는 다른가. 올 라운더를 꿈꾼다고 했지만, 한때 삶의 전부를 바쳐왔던 시를 완전히 놓아버린 채 다른 장르로 훌쩍 옮겨 갈 수 있을까. 시는 나를 놓아줄까. 애초에 시가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잡은 적이 있을까. 마음과 머리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멈출 줄 모르고 과열돼갔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 줄담배를 피웠다. 울고 싶었고, 미친 척 웃고 싶었고, 너무 무서워 콱 죽어버리고도 싶었다. 고작 나 따위가, 지금의 나 따위가 이런 심정에 처해 있다는 게 더럽게 비참하고 우스웠다. 그러나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다는 것, 더 좋은 시, 더 잘 쓴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감이 아니라 심판 같은 단정이었다. 그저 그런 시를 쓸 수 있겠지. 지금까지 해왔듯 열심히 쓴다면, 그저 그런 이야기를 시로 써서 빛 좋은 개살구마냥 내놓을 수도 있겠지. 그런 시간을 견뎌가며 시로 하고픈 이야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런 날은 올지 안 올지 모른다. 밤이 지나 새벽이 오고 아침이 오는 것 마냥 시간이 지난다고 오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내가 쉽게 시를 놓지 못하리라는 것도 빤했다. 여인숙 앞 노파들처럼, 살아왔던 삶의 관성대로 손을 뻗고 쥐려고 할 것이다. 추해 보였다.
(「병원에서 보낸 한철」 p.77-78)
그런 염려를 사람에게 거는 기대라고,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러한 일말들은 언제나 배신당했다. 감은 눈을 더욱 힘주어 감았다. 나는 나의 순진함이 싫었다. 사람에게 아직도 기대를 거는 내가 같잖았다.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세상 또한 엎어 버리고 싶었다. 나는 무례가 판치는 세상을 엿 먹이고 싶었고, 닳아빠져 빤빤해진 예의와 친절을 일삼는 치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살가운 사이비」 p.153-154)
세상을 살기엔 저 자신이 나약하다고 느껴집니다. 이따금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죠. 부모님은 저를 사자로 키우고 싶어 하셨지만, 글쎄요, 친구들은 제가 늑대나 하이에나를 닮았다고 하는데, 그 또한 이미지 메이킹의 성과입니다. 저는 그냥 날다람쥐입니다. 죽을 작정으로 뛰어내렸는데 눈 떠 보니 날고 있네? 아무리 뛰어내려도 무사히 착지하네? 제가 작가로서 가진 유일한 재능일지도 모릅니다.
(「Fall in L……ibrary」 p.160)
맥락 없이 닥쳐오는 불행을 대하는 방식으로 나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매일매일 글을 쓰고, 글쓰기 역시 마음고생이 심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조금씩 삶의 균형을 잡아나갈 수 있었다. 불행은 이야깃거리와 사색과 다채로운 감정 그리고 글쓰기를 추동할 힘을 가져다줬다. 글을 쓸 때만이 불행은 효용 가치를 지녔다. 불행이 나를 단련한다? 그건 모르겠고, 더 나은 글을 쓰게 해준다. 그러니 글을 쓸 수 있는 한 불행도 괜찮다. 나는 괜찮은 것이다.
(「무슨 일 있어?」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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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판형 : 110*175
총 페이지 : 250p
표지 용지 : 스노우 250g
내지 용지 : 미색모조 80g
제본 : 무선제본 세로형좌철
후가공 코팅 : 유광 코팅
정가 : 10,000
초판 1쇄 발행일 : 2023년 11월 17일
ISBN : 979-11-978295-1-2
출판사 : 리와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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